장우성화백, 52년만에 聖畵 3점 '상봉'

  • 입력 2001년 8월 2일 18시 40분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옛 애인을 다시 만난 것 같습니다.”

원로화가 월전 장우성(89) 화백이 자신의 1949년작 대형 성화 3점을 52년만에 만나 깊은 감회에 젖었다.

이 그림들은 1950년 천주교 노기남 주교(작고)에 의해 로마로 보내져 50여년간 교황청 고문서고에 보관되어왔다. 그러다가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전시를 위해 이번에 한국에 돌아온 것. 그림들은 1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주교관에서 장 화백이 직접 개봉했다.

사실 이 그림들은 교황청 고문서고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 사서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창고 속에 계속 묻혀 있을 뻔 했다. 이 사서가 그림들을 창고 속에서 찾아내 교황청 복도에 걸었고 교황청을 방문한 한국교회사연구소 최승룡 신부가 이를 우연히 보고 국내에 들여온 것이다.

“91년 제 첫 번째 화집을 만들 때 이 그림들을 화집에 꼭 담고 싶어서 직접 로마 교황청까지 찾아갔습니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어요. 정말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이어서 죽기전에 한번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간절했습니다.”(장우성)

그림들은 성모가 아기 예수를 한 손에 안고 다른 손으로 어린 세례자 요한의 손을 잡고 있는 그림과 조선시대 천주교의 남자 순교자 3명과 여자 순교자 3명을 각각 별도로 그린 3연작. 가로 1m, 세로 2m 정도의 대형 종이에 고급 일본산 물감으로 채색한 작품들은 장 화백의 말처럼 52년전에 비해 많이 퇴색했지만 대가의 손을 거친 아름다운 색감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는 천주교인은 아닙니다만 당시 서울대 미대 교수로 일하면서 독실한 천주교인이자 같은 학교 선배 교수인 장발 선생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성화속의 인물을 선정해준 것이나 이들의 모습에 대해 자문해준 것도 모두 장발 선생입니다. 조선시대 관복을 입은 남종삼, 갓을 쓴 김대건 신부, 복건을 두른 어린 유대철 등 남자 순교자 이름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여자 순교자는 쪽진 머리의 강콜롬바(강완숙)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장우성)

그림을 들여온 최 신부는 “그동안 그려진 천주교 성화들을 참조할 때 강완숙 이외에 다른 여자 순교자는 김효주와 김효임이라는 이름의 자매 순교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평화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정웅모 신부는 “스승인 이당 김은호에게서 받은 영향과 젊은 시절 영정을 잘 그렸던 섬세한 화풍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며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소장된 성모자(聖母子)화 함께 그의 40, 50년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들 작품은 일부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고 새로 표구작업을 거쳐 8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서울 합정동 절두산 순교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이 작품들은 전시가 끝나면 교황청으로 다시 돌려 보내게 된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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