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는 지난달 14일 ‘음치 가수’ 이재수가 펴낸 음반 ‘이난’과 ‘이난’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서울지방법원에 판매 및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서태지에 따르면 이재수는 이 음반에서 자신의 95년 히트곡인 ‘컴백홈’을 ‘컴배콤’으로 바꿔 부르고 뮤직비디오도 제작했다는 것. 서태지는 5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서태지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www.seotaiji.com)에 올린 ‘태지의 화(話)’라는 글에서 “음악을 도둑질 당한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의 탈을 써야 하는 순간”이라며 “승소 여부를 떠나 오히려 패러디 문화를 바르게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재수 측은 “패러디에 필요한 법적 조치를 밟았다”며 “서태지 같은 음악인이 그저 웃어보자고 음반을 만든 한 신인 가수에게 감당하기 힘든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밝혔다.
▽어떻게 된 일인가?〓이재수 측은 4월경 서태지 측에게 ‘울트라맨이야’를 ‘울트라면이야’로 ‘패러디’하기 위해 허락을 요청했지만 서태지 측은 거부했다. 이에 7월2일 이재수 측은 원저작자인 서태지 측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컴배콤’이 수록된 ‘이난’을 발매했다. 서태지 측은 곧 항의했고 이재수 측은 “법적 조치를 밟았다”고 밝혔다. 이에 서태지 측은 7월14일 법원에 판매 및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
서태지 변호인 측은 “‘컴배콤’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원저작자인 서태지의 인격을 심하게 훼손했으며, 원작물의 특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동일성 유지권’에도 저촉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재수측은 “패러디의 경우 원작자인 서태지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면서 “하지만 저작권협회를 통해 ‘컴백홈’의 패러디에 필요한 사후 승인은 받았다”고 반박했다.
▽‘컴배콤’은 과연 ‘패러디’인가?〓이재수가 서태지에게 허락을 받았는지 등 법적 다툼으로 출발한 이번 파문은 ‘컴배콤’이 패러디 작품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느냐 하는 음악적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서태지를 옹호하는 팬들과 음악인들은 “‘컴배콤’의 노래와 뮤직비디오에서는 서태지가 발표 당시 추구했던 새로운 음악적 시도는 물론, 그가 모델로 삼았다는 미국 패러디 가수 얀 코빅처럼 원작의 비판을 통한 메시지 전달도 없다”며 “패러디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얀 코빅은 마이클 잭슨과 ‘너바나’ 등을 패러디하면서 원작을 뒤엎는 독특한 메시지를 던져왔다. 특히 ‘너바나’의 ‘스멜즈 라이크 틴 스피릿(Smells like teen spirit)’을 ‘스멜즈 라이크 너바나(Smells like Nirvana)’로 패러디하면서 주류를 거부하며 대안 음악을 표방했던 ‘너바나’가 오히려 주류로 편입되는 상황을 비꼬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발아기의 국내 패러디 문화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너무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공중파 TV의 한 음악PD는 “서태지 측이 ‘컴배콤’의 수준을 거론하는 것은 최근 국내 가요 중 패러디로 되새김질 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거의 없었음을 반증한다”면서 “오랜만에 나온 패러디인 만큼 당분간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엽·이승헌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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