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 기자의 반집&한집]목 5단 실수 깨닫자 '무릎앉아' 장고

  • 입력 2001년 8월 12일 18시 59분


프로기사들은 대국 중 한 가지씩 버릇을 갖고 있다. 조훈현 9단의 ‘한국어, 일본어 섞어 중얼거리기’, 유창혁 9단의 ‘상대방 째려보기’ 등은 유명한 버릇이다.

이에 비하면 세계 바둑의 일인자 이창호 9단은 특이한 대국 버릇이 없는 편. 하지만 이 9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버릇 하나를 갖고 있다.

이 9단의 버릇은 형세가 불리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좌우로 3, 4번 정도 흔드는 것.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다. 형세가 유리할 때도 가끔 그렇게 흔들지만 이 때는 좌우로 흔드는 횟수도 1번 정도 적고 흔드는 강도도 훨씬 약하다.

8일 열린 제6회 농심 신라면배 국내 예선 결승에서 맞붙은 이창호 9단과 목진석 5단. 예선 결승이지만 두 기사의 지명도에 비춰 주위의 관심이 집중됐다.

장면 1도. 백 ○의 눈목자 행마는 경묘한 수법. 이 9단은 흑 1, 3으로 가르고 나가 실리를 챙기고자 했다. 그러나 이게 축을 고려하지 못한 실수였다. 백이 4로 끊어 강력하게 버틴 뒤 6으로 붙이자 흑의 응수가 없어진 것.

행마법대로 하자면 흑 ‘가’로 둬야 하지만 이건 백 ‘나’의 단수가 절묘한 축머리여서 흑이 망한다. 흑은 눈물을 머금고 7로 뻗었지만 백은 8, 10으로 흑진 속에서 알뜰하게 살아버렸다. 흑이 두터운 형세에서 졸지에 백 유리로 바뀐 것.

목 5단은 버릇이 없을까. 목 5단도 이 9단 만큼이나 얌전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정확한 수 읽기가 필요할 때면 신발을 벗고 소파 위에서 ‘무릎 앉아’ 자세를 취하며 수를 읽는다.

장면 2도. 흑 1로 밀었을 때 백 2, 흑 3의 교환은 타이밍 좋은 선수. 바야흐로 때가 무르익었다. 백은 몇 차례 잔 실수 때문에 형세가 아주 미세해졌지만 백이 ‘가’의 선수 끝내기를 하면 두텁다는 것이 검토실의 중론. 하지만 목 5단의 손길은 검토실의 기대를 외면한 채 백 4에 머물렀다. 이 9단은 1초도 안 돼 흑 5에 두었다. 목 5단의 얼굴엔 ‘흠칫’ 놀라는 표정이 스쳤다. 황급히 ‘무릎 앉아’ 자세를 취하며 수 읽기에 들어갔지만 명백한 착각. 목 5단은 백 4가 선수인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지만 3집 정도의 끝내기에 불과한 수였다.

그 뒤로 두 대국자는 1분 초읽기에 몰리며 약 50여수를 더 두었지만 한번 승기를 잡은 이 9단은 절대 양보가 없었다. 255수만에 흑 불계승.

이날 송태곤 2단과 농심배 예선 결승을 둔 조훈현 9단은 일찍 승리를 거둔 뒤 끝까지 이 대국을 지켜봤다. 그가 마지막에 제시한 참고도는 두 대국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즉 장면 2도에서 백 4 대신 백 ‘가’, 흑 ‘나’로 교환한 뒤 백 ‘다’의 급소로 치중하는 것. 이어 흑 대마는 두 집 내고 살아야 하는데 이러면 백 승이 확정이라는 것. 아직도 조 9단의 감각은 날카로왔다.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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