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옌벤에서 발굴된 300여편의 시중 70편을 추린 시선집 ‘소년아 봄은 오려니’(강원도민일보사)가 최근 발간된 것이다. 이로써 소중한 민족시인의 작품을 50여년만에 만날 수 있게 됐다.
이 시집에는 표제시를 비롯해 ‘빨래’ ‘만주’ ‘지평선’ ‘국경의 하룻밤’ 등 대표 시들이 실렸다. 책 뒤에는 심씨의 작품을 처음 국내에 소개한 임헌영 중앙대 교수 등 여러 명이 상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강릉에서 태어난 심연수는 6세때 독립운동가인 삼촌을 따라 연해주로 이주했다. 17세때 중국 용정중학교를 다녔고 1941년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1943년 학병 강제징집을 피해 용정으로 돌아가 시 창작에 매달렸다. 그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던 중 만주군의 총탄에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시는 민족의 한을 애절하게 표현하거나, 독립의지를 강인하게 그린 작품이 많다.
‘봄은 가까이 왔다 /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 / 너의 조상은 농부였다 / 너의 아버지도 농부였다 / 전지(田地)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 / 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게다 / 가산(家山)은 팔렸으나 /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 /(…)/ 서투른 대장장이의 땀방울이 /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소년아 봄은 오려니’ 중)
심연수는 1년 연상인 시인 윤동주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비슷한 시기 용정중학교를 다녔고, 일본에서 유학했으며, 죽고 난 뒤에 유작이 평가받았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윤동주가 은유적인 시풍을 보인다면 심연수는 직설적이고 호쾌한 필치를 보여준다. 시에 담긴 일제에 대한 저항의 농도는 이육사 이상화 유치환 등과 비교될 만큼 높다.
굽히지 않는 항거의식을 표현한 ‘고집’ 같은 작품은 항일문학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집을 써라 끝까지 / 티끌만한 순종도 보이지 말고 / 타고난 엇장을 굽히지 말라 / 벽을 문이라고 우기고 /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우기고 / 소금이 쉬어 곰팡이 피고/ 사탕이 썩어 냄새난다면 / 그건 고집없는 탓이지 / 우기고 뻗치다 꺽어진 건 통쾌해도 / 뉘게다 굽석거리는 꼴은 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
한편 지난 8일 심씨의 56주기 기일에는 중국 옌벤시에서 한국과 예벤의 국문학 연구자들이 심연수의 작품을 재평가하는 세미나와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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