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한국 천주교 초기 순교자 전기집 나온다

  • 입력 2001년 8월 16일 18시 37분


“하느님을 부인할 수 없었던 원시장(충청도 지역 최초의 순교자)은 다시 주리를 틀리고 곤장을 맞았다. 살점이 너덜거리고 두 어깨뼈는 부러졌으며 등뼈는 으스러져 허옇게 드러났다. 고문이 끝났을 때는 옥졸들이 그를 둘러 업고서야 겨우 감옥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손으로 음식을 넣어주어도 삼키지 못할 정도였다. 충청도 홍주 목사는 혈육의 정에 호소해보기로 했는데 그를 끊임없이 찾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시장은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니 제 마음이 크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친히 저를 부르시는데 어찌 그분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목사는 마침내 그를 결박한 뒤 물을 부어 추운 한밤 중에 내놓아 얼려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내 굵은 밧줄에 묶여진 원시장의 몸에 물이 뿌려졌다. 밤이 되자 그가 덮어쓴 물은 얼음으로 변해 온몸이 얼음덩어리가 됐다. 그는 닭이 두 번째 홰를 칠 무렵 숨을 거뒀다.”

신유박해(1801년) 200주년을 기념해 신유박해 시기까지 천주교 초기 순교자들의 생애를 그린 전기집 ‘순교는 믿음의 씨앗이 되고’가 서울대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21일경 출간된다.

이 책에는 조선 교회에 최초로 파견된 선교사 주문모 신부, 주 신부와 활동한 여성회장 강완숙과 그의 아들 홍필주, 주 신부를 폐궁에 숨겨준 왕실부인 송마리아, 최초의 평신도 총회장 최창현, 교리에 뛰어났던 명도회 회장 정약종과 그의 아들 정철상, 백서(帛書)사건의 주인공 황사영, 동정부부 유중철과 이순이,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백정출신의 순교자 황일광 등 53명의 약전(略傳)이 소개돼 있다.

53명 중에는 이름도 영세명도 알려지지 않고 오직 성으로만 전해지는 오씨 원씨 등 전라도 지역의 두 순교자도 포함돼 있다. 집필은 김진소 윤민구 신부와 이원순 차기진 하성래 교수 등이 맡았다.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대주교가 책 서두의 발간축사를 통해 밝혔듯이 이 책은 단순한 전기집에 그치지 않는다. 올 2월 정 대주교에 의해 천주교 초기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諡福諡聖)운동이 선언된 상황에서 시복시성의 기초 자료수집 작업을 마무리하고 시성시복 청원에 꼭 필요한 약전을 완성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변우찬 신부는 “1840년대에 한국에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이 신유박해 등을 직접 목격한 신자들로부터 듣고 기록한 증언들이 파리외방전교회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며 “이들 자료를 중심으로 당시 조선왕조의 기록 등을 참조해 최대한 사실에 근접하게 전기집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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