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 입력 2001년 8월 17일 18시 26분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이종호 지음/320면 1만3000원/컬처라인▼

TV 시리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소설 ‘뿌리’. 아메리카에 노예로 팔려가 갖은 박해를 받았던 7대조 할아버지의 기록을 찾아가는 감동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런 핏줄찾기 소설은 한국에서는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터. 저자 알렉스 헤일리가 이 땅에서 태어났다면 7대조 할아버지의 기록을 간단하게 찾아냈을 것이다. 족보만 뒤져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60∼70년대 ‘박정희식 경제개발’을 앞세운 불도저식 근대화는 외국 문물에 대한 동경을 낳았다. 부유층 주부들이 앞다투어 사들여 사회문제까지 비화됐던 일제 ‘코끼리표 밥통’은 외제 숭배의 서글픈 상징이다. 반면 세계인이 놀라는 우수한 우리의 전통은 ‘촌스러운 봉건잔재’로 푸대접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귀중한 역사자료인 족보는 골방에 쳐박아둔 채 외국개의 혈통은 끔찍하게 챙기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과학자 출신의 저자는 여러권의 책을 통해 곁에 두고도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 유산의 우수성을 복권해왔다. 이런 노력의 일환인 이 책에서도 우리 민속문화와 정신문화를 과학적, 합리적 해석을 통해 제 몫을 찾아주려고 한다.

닥나무로 만든 전통 한지(韓紙)가 가진 장점은 놀랍다. 1997년 시사주간지 ‘라이프’가 지난 인류 천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 성경을 인쇄한 것을 꼽았다. 하지만 당시 제작된 성경은 500여년이 지난 지금 지질 보관에 문제가 있어 열람조차 불가능하다고 한다. 반면 한지로 만들어진 책은 천년의 세월도 끄덕없이 삭지도, 썩지도 않는다.

저자는 자랑에 머물지 않고 과학적 연구자료까지 제시하고 있다. 한지의 경우 우리 조상이 처음 고안한 종이의 표면가공기술, 즉 도침(搗砧)이 그것이다. 풀칠한 종이를 여러장 겹쳐놓고 디딜방아 모양의 도침기로 골고루 내리치면 표면이 매끄럽고 치밀하게 된다.

그 결과 옻칠을 해서 몇 겹으로 바른 한지 갑옷은 화살도 뚫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고 전한다. 값비싼 이중 유리창문보다 창호지문이 보온뿐만 아니라 항습에서도 효과가 높다는 실험결과는 쉽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풍수지리가 반드시 비과학적인 것만 아니라는 점을 토양분석 실험결과로 보여준다. 보통땅은 산성인데 명당으로 확인된 땅은 토양이 중성이라 달걀을 오래 묻어놔도 전혀 부패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런 점을 이집트의 미라가 발견된 토양과 연결시켜 분석한 연구결과를 소개한 점 역시 흥미롭다.

여러 가지 읽을거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제목과 달리 ‘과학’에 대한 설명은 그리 많지 않다. 각종 역사적 근거 뿐만 아니라 여러 참고자료에서 막 옮겨 적은 듯한 자료들이 날것으로 병렬되어 있다. 때로는 ‘문화유산’이란 테마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과하게 삽입되어 책의 일관성을 흐리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쥬라기 공원’을 히트시킨 주역 한국공룡”이란 장에서는 우리공룡에 대한 설명은 초반 잠깐이다. 대신 공룡의 화석 발자국, 냉혈동물 논란, 멸종설 등 공룡책에 실음직한 장황한 일반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같은 정제되지 못한 ‘자료 모으기식 저술’이 자칫 이 책에 흠을 내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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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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