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 퇴계 선생이 그 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됐을 때 중고생들에게 퇴계에 관한 책을 읽게 하고 독후감을 받아 상을 주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서점에 가서 아무리 뒤져봐도 중고생들이 볼 만한 책이 없었어요. 현실을 무시한 채 사업을 추진했던 죄책감만 안고 사업을 중단했지요.”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수도(修道)의 길에도 들어보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는 그는 뒤늦게 선조이기도 한 퇴계에 심취했다. 혼자 공부하다가 퇴계학연구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1989년.
그가 그곳에서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는 “퇴계를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만들어달라”는 안팎의 요구였고, 이 책은 이런 주문에 응답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우리의 소중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 특히 아직 눈동자가 맑은 청소년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의 덕성교육에 주안점을 두었지요. 무엇보다 인격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스로 고뇌하고 탐구하는 퇴계의 모습을 책에 담으려 했습니다.”
그가 ‘퇴계전서(退溪全書)’ 전체를 꼼꼼히 뒤지며 골라낸 글들은 일반인들이 모르고 있던 퇴계의 새로운 모습을 전해준다.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퇴계를 이해하려 애썼으며, 또 이 책에서 얼마나 퇴계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전에 제가 했던 단전호흡 같은 수련은 잘못하면 기(氣)만 거세질 우려가 있지만, 퇴계 선생의 가르침은 모든 것을 윤리 도덕에 기반합니다. 이를 통해 완성된 인격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학의 공부는 폐단이 적지요.”
단전호흡을 수행하다가 성리학을 공부했으니 두 입장에 서로 충돌되는 점이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실제로 자기의 마음, 즉 자기 스스로와 만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는 퇴계가 50세 때 썼다는 시 한편을 좋아한다며 내놓는다.
“…아홉 길 높이 쌓음
어려운 일 아닌 줄 알려면
평지에서
한 삼태기부터 시작해야 하리라…”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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