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아름다운 세상 어떻게 가능한가'이타적 유전자'

  • 입력 2001년 8월 24일 18시 25분


◇ '이타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 지음/396쪽 1만5000원 사이언스북스

장 속의 닭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모이도 쪼아먹고 꼬꼬댁거리는 걸 보면 닭이 닭이라는 생명의 주체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닭이 알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시 알이 닭을 낳는 것은 아닐까.

닭은 잠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임기’를 다하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생명의 숨을 이어온 알 속의 DNA야말로 진정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이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닭이라는 생명에게는 말이다. 닭은 알이 더 많은 닭을 낳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기계일 뿐이다.

달걀 속의 DNA는 물론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물의 DNA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지닌다. 모두 태초에 우연히 생성된 어느 성공적인 한 복제자로부터 분화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물학자들이 DNA라 이름 붙인 이 기막히게 성공적인 물질은 오로지 자기의 분신을 만드는 일밖에 모르는 존재이다. 그래서 일찍이 옥스퍼드의 생물학자 도킨스는 그들을 가리켜 ‘이기적 유전자’라 불렀다.

얼마 전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의 조각작품이 어느 큰 미술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들에게 그다지 생소한 표현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기적인 유전자가 어떻게 이타적 인간을 만들어내는가를 설명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미 ‘게놈’의 저자로 잘 알려진 리들리의 저서 ‘이타적 유전자’는 바로 이 다분히 이율배반적인 명제를 명쾌하게 설명해낸 훌륭한 책이다.

우리 사회는 요즘 미성년자와 매춘행위를 한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문제를 놓고 자못 시끄럽다. 자신이 저지른 파렴치한 행위에 대한 반성보다는 사회적 평판의 훼손에 더 조바심을 내는 모습을 보면 어쩌면 인터넷이 추락한 우리의 도덕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으면 작은 마을에 모여 살며 차마 이웃집 어린 딸을 겁탈하고는 동네에서 머리를 들고 다니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적 평판이 돌고래들로 하여금 서로 협동하고 신의를 저버리지 못하게 한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의 원저에는 ‘덕(德)의 기원(The Origins of Virtue)’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덕망있는 이들을 칭송하고 희생과 협동을 사회 제일의 덕목으로 존중하지만 우리 사회가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테레사 수녀나 이수현 같은 이들보다는 남의 불행을 나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동방예의지국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한 다리만 건너면 철저하게 ‘동방무례지국’으로 전락한 우리 사회의 변화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리들리는 이 책에서 해밀턴의 ‘혈연선택설’과 트리버즈의 ‘상호호혜이론’ 그리고 폰 노이만의 ‘게임이론’을 가지고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개체들이 모여 이타적인 사회를 이루는 과정을 쉽게 그러나 권위 있게 풀어낸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갈등과 협동 사이에 놓여 있다.

유전자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비록 한 몸 속에 들어앉아 있지만 제가끔 다른 족보를 가진 유전자들이 언제나 일사불란하게 협동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DNA안에 있어도 제각기 자기만의 복제를 꿈꾸기도 한다. 그래서 흔히 유전자를 국회의원에 비유한다. 자신의 지역구만 챙기기에 급급하다 보면 나라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인가. 유전자들은 필요할 때마다 서로 손을 잡을 줄 안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생명의 모습은 언뜻 허무해 보인다. 그러나 그 약간의 허무함을 받아들이면 내 스스로가 철저하게 겸허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리곤 자연의 일부로 거듭나게 된다.

몇 년 전 노벨상을 수상한 바 있는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리추구형 인간을 ‘합리적 바보’라 부른다.

요사이 우리 사회에는 이타적 유전자 결핍으로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못하는 ‘바보’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최재천(서울대 생물학과 교수)

◆ ‘생물학적 본성론’ 추천서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현대 생물학적 논의는 역시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에서 출발한다. 현대의 고전이 된 이 책은 인간 본성과 자연의 진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필독서이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드워드 윌슨·사이언스북스)’를 권한다. 도덕성의 진화는 물론 인간의 다른 여러 특성에 대한 진화학적 논의가 담겨 있다. 피터 싱어의 ‘사회생물학과 윤리(인간 사랑)’도 추천할만한 책이다.

제러드 다이아먼드의 ‘제3의 침팬지(문학사상사)’는 윌슨의 책에서 다뤄진 주제들을 보다 현대적으로 해석한 책으로 흥미롭다. 국내 학자가 쓴 책으로는 최재천의 ‘알이 닭을 낳는다(도요새)’가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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