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전통 과학철학으로의 초대 '과학의 구조'

  • 입력 2001년 8월 24일 18시 30분


◇ '과학의 구조(Ⅰ,Ⅱ)'/ 어니스트 네이글 지음 전영삼 옮김/

Ⅰ권 562쪽 2만5000원, Ⅱ권 482쪽 2만3000원, 아카넷

한 사회 안에서 만들어지고 읽히는 책들이 그 사회의 지적 수준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는 것은 우리의 지적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음 의미한다.

저자인 네이글은 비엔나 학단의 논리실증주의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논리경험주의 진영의 중심적 인물이다. 그리고 그에게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다름아닌 이 저서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책이 나온 1961년은 바로 다음 해에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출간되었던 점을 감안할 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쿤이 그의 저서를 통해 그려낸 과학의 역동적 이미지는 과학의 보편적 성격을 부각시키는 데 관심을 집중했던 논리경험주의의 견해와 많은 점에서 대비됐다. 20세기의 과학철학을 두 시기로 나눌 때 ‘새로운’ 과학철학의 도래를 공포한 것이 ‘과학혁명의 구조’라면, 네이글의 이 책에는 그 이전의 전통적 과학철학이 포괄적으로 집약돼 있다고 할 수 있다.

40년 전에 나온 책인데다가 ‘쿤 이전’의 과학철학이라고 해서 그저 낡은 관점을 담고 있겠거니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논리경험주의의 과학관은 그 문제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관점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글은 과학철학의 중심 문제였던 ‘구획(demarcation)’, 즉 과학적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가르는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일반적으로 신뢰와 높은 평가를 동반하는 ‘과학’, 또 ‘과학적’이라는 표현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네이글은 과학의 본질을 그것의 논리적 구조, 특히 과학적 설명이 지니는 고유한 구조에서 찾는다.

이 책은 과학이론을 ‘부분적으로 경험에 닿아 있는 형식 체계’로 보는 논리경험주의의 기본적 입장으로부터 과학적 설명의 구조를 분석하고 (2∼3장), 과학 법칙의 특성을 논하며 (4∼6장), 이렇게 확보된 관점으로부터 물리학의 면면을 조명한다 (7∼10장).

다음으로 네이글은 한 과학 분야에서 등장하는 상이한 이론들간의 관계나 또 학문 분야들 상호간의 관계를 따질 때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이론간 환원’의 개념을 분석하고, 이어 물리학과 생물학, 사회과학, 역사학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예들을 고찰한다(11∼15장). 오늘까지도 11장의 내용은 ‘과학에서의 환원’을 논의하고자 할 때 결코 우회해갈 수 없는 하나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역자의 건전한 우리말 감각과 내용 속에 얽힌 여러 학문 영역들에 대한 적절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 돋보이는 그의 꼼꼼한 정성은 이 책을 더욱 읽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역자는 독자의 폭을 염려했지만, 이 책은 현대 과학의 모습을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모든 지성인들이 출발할 수 있는 안전한 지점이다.

고인석(연세대 철학연구소 전문연구원·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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