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동물들…영화로, 책으로, TV로, CF로

  • 입력 2001년 8월 26일 18시 35분


◇"사진보면 묘한 쾌감"

브레들리 그리브의 사진 에세이 ‘The Blue Day Book(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에는 쥐의 사진이 나온다.

각 사진에는 ‘손톱이나 물어뜯고’(31쪽), ‘열 받으면 순식간에 초콜릿 삼단 케이크를 먹어치우죠’(33쪽) 식의 설명이 있다.

독자들은 이를 ‘쥐의 모습을 한 인간’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직장여성 김현지씨(27)는 느낌을 이렇게 설명한다.

“특히 여자들은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손톱을 물어뜯고 과자나 빵 등을 먹어치우는 경향이 심해요. 이 때문에 이 사진을 보면 바로 제 자신이 떠오르고 그 쥐는 곧 제가 됩니다.”

어느 정도 연조가 있는 직장인들은 다른 모습에 흥미를 보인다. 이호철씨(35)는 불독이 쥐를 노려보는 사진을 보고 묘한 쾌감을 느낀다. 사진 설명은 ‘직장 상사는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5월 출간돼 4만여부가 팔린 이 책에는 눈물을 훔치는 곰, 꽈당 하고 나자빠진 펭귄 등이 실려 있다. 그 표정들은 ‘인간적’이다.

◇의인화된 동물이 자신의 모습

영화 책 TV 애니메이션 CF 등 각 미디어가 갖가지 모습의 동물을 마케팅포인트로 삼고 있다. 그 동물들은 애완동물로만 투영되지 않는다.

동물이 도시민의 마음을 파고드는 ‘동물의 시대’. 전문가들은 ‘인간’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몸부림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홍영남 교수는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인간이 동물을 통해 인간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간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라고 말한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미화 실장은 “그리브 책의 인기는 사람보다 동물이 낫다는 생각이 보편화됐고 의인화된 동물이 독자 자신의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의도적인 연기아닌 순수합

▽영상물에 동물 봇물〓영화 ‘캣츠 앤 독스’에서 개들은 인간 세계를 지키기 위해 고양이들에 맞서 전쟁을 벌인다. 동물을 의인화한 포케몬과 디지몬 등도 얼굴은 괴물이지만 아기의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인간을 대신해 악마와 싸운다.

애니메이션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주인공 토토로는 고양이와 고슴도치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경쟁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평을 듣는다. ‘포켓몬스터2-루기아의 탄생’ 역시 토끼를 의인화한 피카추로 인간을 대신해 악당과 싸운다.

SBS TV 애니메이션 ‘방가방가 햄토리’는 햄스터를 키우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TV 동물농장’에는 동물들이 단순 구경거리가 아닌 ‘주체’로 등장한다. MBC의 ‘목표 달성 토요일’은 그룹 쿨의 멤버 3명이 새끼 진돗개와 돼지를 키우는 ‘쿨의 동물천하’를 신설했다. 또 KBS2 ‘쇼 파워 비디오’에는 연예인 김민희씨가 돼지를 기르는 코너가 있다.

문화비평가 김지룡씨는 “대본과 연출에 따라 연기하는 연예인이나 TV출연자에게 식상한 시청자들이 의도적인 연기를 하지 않는 동물을 보며 신선함을 느낀다”고 해석했다.

◇광고계 앞다퉈 '모시기' 경쟁

▽동물은 광고 성공 보증수표〓광고업계에서 동물(Beast)은 아기(Baby), 미인(Beauty)과 함께 소비자의 시선을 쉽게 끌 수 있는 대표적인 모델로 ‘성공 보증수표’로 불린다.

악어, 캥거루, 게 등 동물 모델 시리즈로 화제를 불렀던 카프리 맥주는 ‘양치기 개’를 모델로 한 CF를 선보였다. 또 조흥은행은 8월 초부터 백두산호랑이가 나오는 이미지 광고를, 삼성르노자동차는 강아지, 시몬스침대는 고양이가 나오는 광고를 방영하고 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이현주씨의 '고양이 예찬'

“정을 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밍키’(터키시 앙고라 종) ‘재키’(히말라얀 종)라고 이름지은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고 있는 이현주씨(23·여·서울팝스오케스트라 첼리스트)는 “고양이에 대해 알수록 기르는 재미가 커진다”고 말했다.

이씨 주변에는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많다. 이씨는 친구의 고양이에게 서슴없이 “이모한테 와야지, ○○야…”라고 말할 정도.

이씨의 ‘고양이 예찬론’을 들어보자. 우선 하루에 절반 이상 잠을 자는 데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독립적 성격이라 주인이 바깥에서 마음놓고 일을 볼 수 있다.

모래만 갖다 놓으면 별도로 훈련시키지 않아도 대소변을 정해진 장소에서 해결한다. 가끔씩 이름을 불러도 오지 않는 ‘까다로움’이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진다.

이씨는 인터넷 다음카페(www.daum.net)의 동호회 ‘냥이네’에서 고양이 키우기에 관한 정보를 얻거나 전용 쇼핑코너가 있는 퍼피즌(www.puppizen.com)을 주로 이용한다.

동호회는 주인끼리 정보교환을 통해 발정이 난 자신의 고양이와 같은 종자의 고양이에게 ‘만남’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어 좋다. 수고양이 주인이 암고양이의 주인에게 10만원 정도를 받는 관행이 있다.

털이 많이 빠져 매일 바닥이나 소파에 있는 털을 한 뭉텅이씩 치워야 하는 게 흠이긴 하다.

대소변용 모래도 세균이 번식하지 않는 고급 모래를 쓸 경우 사료비를 합쳐 한 달에 10만원가량의 양육비가 든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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