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연말, 정경화는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취임이 예정돼 있던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이 곡을 빈에서 다시 연주했다. 또 하나의 세계 정상 악단인 빈 필하모니와의 협연이었다. 공연이 끝난 직후 별도의 레코딩이 이루어졌다. ‘2001년 발매 예정!’ 얼마나 기다림을 자아내는 한 마디였던가.
그 음반이 드디어 국내 음반시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놀랍게도, 함께 수록된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최근 베를린필과의 계약서에 서명한 래틀의 ‘가장 따끈따끈한’ 새 음반인데다, 이처럼 교향곡과 협주곡이 한 음반에 ‘커플’로 들어있기는 극히 드문 경우라 더욱 눈을 크게 뜨게 된다.
연주는? ‘군더더기를 잘라내 풍요함을 찾아냈다’. 정경화의 느긋한 활 긋기는 곳곳에서 숨을 조이고 풀어주면서 가장 편한 진행을 찾아내지만, 큰 범위 내에서 템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느긋한데도 다소 빠르다. 악절(樂節)의 마지막을 길게 늘이는 등의 과장을 가하지도 않는다.
강약에도 허식이라고는 묻어나지 않는다. 많은 수식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삶의 이치를 표현하는 좋은 문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딜럭스하다. 마음먹은 대로 가는 차처럼, 무조건 편하다!’ 같이 음반을 들은 이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함께 수록된 베토벤의 교향곡 5번도 쓸데없는 무게를 빼낸 알찬 연주. 음향의 밸런스가 잘 잡혀있고, 음색이 뜨거우면서도 잘 정돈돼 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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