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한눈 팔다보니…

  • 입력 2001년 8월 30일 18시 50분


기상시간을 알리는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기계적으로 벌떡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두르던 직장 여성 L씨(33).

큰아이 놀이방용 책가방 챙기고 작은 아이 기저귀 갈고 아침 식탁 차리느라 정신이 없던 L씨가 느릿느릿 이불을 개다말고 TV 아침뉴스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참, 오늘 날씨 어떻대?”

그제서야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남편이 하는 말.

“기상 캐스터 얼굴 보느라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들었어. 요즘 캐스터들은 왜 이렇게 이쁜거야.”

“조금 있다 또 나올거야. 그땐 단단히 들어둬야 해.”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화장을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현관문을 나서던 아내가 그때까지 밥숟가락을 든 채 TV 앞에서 뭉그적거리던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날씨 어떻다고 그랬어?”

“또 못들었네. 캐스터 언니의 환한 미소로 봐서는 아마 맑을거야. 안심하고 먼저 가.”

L씨 부부는 기상 캐스터의 ‘맑게 갠’ 얼굴만 믿고 우산 없이 집을 나섰다. 그들은 오후에 소나기를 만났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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