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은 ‘거짓말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명제를 종교처럼 맹신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또래들과의 인간관계가 시작되면서, 악의적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의 스펙트럼 상에서 어디까지 거짓말이라는 ‘범죄’를 정당방위로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어른이 되면 선의의 거짓말을 할때 매순간 고민하던 그 순수함마저도 사라진다. 사회적 인간관계란 ‘적당한 거짓말’의 탄탄한 기반 위에 서있다는 것을 세월을 통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에블린 설리반은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이자 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같은 ‘적당한 거짓말’의 효용 가치가 각 시대의 특성과 맞물려 어떻게 다르게 평가되어 왔는지 조명했다.
저자는 인류의 고전인 구약성서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거짓말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브’를 속여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한 뱀,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의 모습을 가장하고 장자권을 인정받은 ‘야곱’, 전령의 신이자 도둑, 변론의 신인 ‘헤르메스’. 이들은 인간의,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형상을 닮은 신의 족적이 남아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거짓말의 흔적이 함께 발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통찰력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 심리를 분석한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설리반은 병적인 거짓말쟁이들의 유형과 그 밑바닥에 깔린 심리구조를 분석했다.
가장 전형적인 유형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과거를 근사하게 포장하기 위해 진실과 공상을 마구잡이로 섞어 거짓말을 하는 ‘수돌로그(pseudologue)’ 환자들이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방식을 프로이트의 시각에서 15가지로 분류한 것도 눈에 띈다. 밖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성적 욕구를 그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성 외적인 행동으로 변형시켜 발산하는 것 역시 자신을 속이는 하나의 방식이다.
저자는 해박한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해 책 곳곳에 다양한 예와 비유, 비교 분석을 늘어놓았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거짓말 탐지 방식을 현대와 중세로 나누어 비교 분석한 것.
중세에 진실과 거짓을 판가름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말한 자가 혹독한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진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는 불에 달궈진 쇠를 맨 손으로 잡기라도 해야 했던 것. 말하자면 현대판 거짓말 탐지기인 셈이다. 오늘날에는 심장박동과 같은 신체적인 변화를 측정해 거짓말을 탐지한다.
이 책은 읽을 거리가 풍성해 독자들에게 분명 읽는 재미를 주지만 가끔씩 눈에 띄는 장황한 설명과 진부한 예시가 흠이다.
저자는 거짓말을 도덕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만, 번번이 “거짓말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으며 세상에 해를 준다”고 너무 ‘뻔한’ 결론을 도출해 적지 않은 허탈감을 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열거되는 수많은 자료들만으로도 이 책은 인간의 본질과 본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대단한 흥밋거리가 될 듯하다. 원제 ‘The Concise Book of Lying’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