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무료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숙경(李淑京·41) 수녀는 흥분해 목청을 높였다.
늦여름의 ‘맹위’가 채 가시지 않은 3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월곡동. 미아삼거리에서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면 꼭대기 부근에 13평 남짓한 허름한 무허가 주택이 눈에 띈다. 이 지역 결식아동들의 보금자리인 ‘밤골 아이네 공부방’이다.
공부방에서는 초등 1, 2학년생 20여명이 선풍기 2대로 더위를 쫓으며 받아쓰기 숙제를 하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아이들은 큰 양푼에 밥, 김치, 간장을 버무려 내놓은 ‘비빔밥’을 허겁지겁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허모군(8·S초등학교 1년)은 재봉일을 하는 어머니가 밤 10시경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며 공부방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허군은 “점심은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으로 때우지만 저녁은 집에 가도 먹을 수가 없어 공부방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요즘 한달 수입이 평균 50만∼70만원이라는 허군의 어머니는 “최근 일당이 줄어 야근까지 해도 수입이 예전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밤골 아이네 공부방’을 운영하는 이 수녀는 “정부가 IMF 관리체제를 졸업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바닥 경기는 예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다”며 “일용직이 대부분인 학부모들이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더 늘었다”고 전했다. 민간 모금액마저 줄어 올해 이 공부방에 대한 지원액은 예년보다 13% 줄어든 1300만원에 머물렀다.
IMF 관리체제를 조기졸업했다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요즘,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는 짙어지고 있다. 서울 곳곳에서 끼니도 때우지 못한 채 거리를 서성이는 결식아동이 오히려 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올 3월말 기준으로 집계한 중식지원 대상 초중고교생은 전국적으로 16만4000여명. 전체 학생의 2%에 이르는 이 수치는 지난해 6월과 비슷한 규모지만 IMF 관리체제 직후인 98년 13만9280명에서 99년 15만1375명으로 상승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가 급식지원(저녁분) 대상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대상인원은 올해 3월 5326명에서 7월에 5602명으로 5.2% 증가했다.
그나마 행정당국의 결식아동 실태조사도 한계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사대상이 대부분 취학 중인 학생들에 맞춰져 취학 전 아동들에 대한 ‘배려’는 찾기 어렵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결식아동들을 위한 공부방 ‘마들창조학교’를 운영 중인 부은희(夫銀熙·32) 교사는 “최근 들어 무료 공부방을 찾는 저소득층 부모들이 더 늘고 있다”며 “수요가 폭증해 임대아파트나 초등학교 앞에 ‘분교’라도 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의 영향 때문에 개인이나 기업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민간지원액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전국 48개 공부방 등에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부스러기복지선교회의 강명순(姜命順·49) 목사는 “저소득층 가정의 경제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는데도 올해 들어 민간지원액은 크게 줄어들어 일부 비용을 빌려 지원사업에 충당하고 있다”며 “결식아동을 돕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연욱·김현진기자>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