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의 언행을 보면 남녀의 성(性)역할이 뒤바뀐 듯한 경우가 허다하다. 여자는 강하고 남자는 부드러운 것이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새 문화로 형성되고 있다.
서울대 3학년 김한영씨(21)는 “술에 취해 남자친구에게 ‘너 죽을래’를 연발하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남자 대학생들은 학교행사 뒤풀이 장소나 야유회(MT)에서 여자 선배들에게 ‘술 먹는 속도가 느리다’거나 ‘술잔이 비었다’고 핀잔받기 일쑤”라고 전했다.
고려대 4학년 김모씨(22)는 교내에서 알아주는 ‘터프 걸(tough girl)’. 남자 동기생들이나 후배들 머리와 어깨를 툭툭 치거나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닌다. 김씨는 “집에서 공주로 자란 요즘 여학생들은 술이면 술, 공부면 공부 뭐든 똑부러지게 하고 싶어한다”며 “과거 여자 선배들은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일부러 ‘터프’를 가장했는데 비해 요즘 여학생들은 남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여고 김모교사(39)는 “여중고생들이 인터넷 웹진을 통해 널리 유포된 ‘씨바’ ‘졸라’ ‘개쉐이’ ‘재섭는(재수없는)’같은 거친 욕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 예사”라며 “요즘 여학생들은 욕을 ‘또래 언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런 ‘여강(女强) 문화’에서 적지 않은 남자들은 오히려 여성화되어 간다.
세 살 연상인 신부와 올 가을 결혼하는 서모씨(28)는 여자만큼이나 용모에 관심이 많다. 애인이 피부 마사지를 하러 가면 반드시 따라 나선다. 서씨는 “요즘 피부관리실의 ‘커플 룸’으로 불리는 마사지실에서는 여자친구와 나란히 누워 얼굴 마사지를 받는 남자들도 많다”며 “화장품이나 옷 액세서리에도 남녀구분이 없다”고 말했다.
김모씨(28·회사원)는 십자수가 취미. 김씨는 “1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마음을 잡지 못했는데 십자수를 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면서 열쇠고리, 방석커버 등 각종 선물들을 직접 만들어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제대하고 올해초 복학한 이모씨(27·연세대 3년)는 “요즘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남자들은 귀엽고 부드럽고 유머가 풍부하고 애교가 많아야 한다”며 “군대생활 2년 동안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는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전현수(田鉉秀·45) 신경정신과 원장은 “미래사회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로 가기 때문에 남자건 여자건 성에 의해 억눌렸던 자기표출방식이 더 자유롭게 분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