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경]전남 여수 사도/남해에 숨은 '쥐라기 공원'

  • 입력 2001년 9월 12일 18시 47분


1억년전 육식공룡의 발자국 화석
1억년전 육식공룡의 발자국 화석
바퀴달린 물건이라고는 리어카, 식수는 지붕위 빗물 모아 모래 자갈 차곡차곡 담은 정수조에 받혀 소독약 풀어 마시는 게 고작인 섬. 주민은 50명, 그나마도 대부분 칠순을 오르내려 평균 연령이 60세에 이르고 그 덕에 52세 초로(初老)가 ‘막둥이’라 불리는 곳.

식당도 하나, 상점(마을 구판장)도 하나, 배도 하루 한 편 밖에 닿지 않는 다도해 여수시의 1969개 섬 중 하나.

여수항에서 뱃길로 27㎞, 사도(沙島·전남 여수시 화정면). 오후 2시반 출항하는 여객선은 이 섬 저 섬 들르느라 한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러나 최단거리 지점인 공정리(화) 포구에서 135마력짜리 엔진단 보트로 내달리면 단 7분만에 닿는 ‘가깝고도 먼 섬’.

사도는 ‘신비의 바닷길’로 잘 알려진 곳. 서해 무창포(충남 보령), 남해 진도(전남)만큼은 아니더라도 바닷길만은 특별하다. 그것은 섬 다섯 개가 한꺼번에 ‘ㄷ’자로 연결(총연장 1.5㎞)된다.

그러나 ‘ㄷ’자 바닷길을 보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뭍사람이 발품팔아 찾아가기도 어려운 것은 당연. 그런 터에 지난해 이 섬에 새 볼거리가 생겨 요즘은 섬을 찾는 발길이 한결 잦아졌다. 그것은 공룡 발자국 화석. 사도와 추도 낭도 등 부근 섬 네곳에서 무려 3020점이나 발견됐다.

공룡 발자국을 찾아 사도에 갔다. 마을 뒤편의 바위 해안. ‘천년층’이라 불리는 이 곳은 변산반도 채석강의 축소판이다. 책을 켜켜이 쌓아둔 것처럼, 층층겹겹의 시루떡 단면을 연상케 하는 붉은 바위벽이 바위해안 한 켠을 막고 있다. 그 돌바닥에 찍혀 있는 공룡 발자국들. 보기에도 확연했다.

사나운 티렉스(영화 ‘쥐라기공원2’에 등장하는 사나운 육식공룡 티라노 사우루스의 애칭) 한 마리가 두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바다쪽으로 간 보행렬(步行列)이 각인돼 있었다. 중생대 백악기 것이라니 어림잡아 1억년은 됨직 한데 그 자국만은 엊그제 찍힌 듯 선명했다.

거대한 바위가 테라스를
이룬 시루섬 해안가

천년층 바위해안의 ‘쥐라기공원’은 시멘트길로 옆섬 중도와 연결돼 있다. 중도 해안길을 300m쯤 걸었을까. 반달처럼 동그랗게 휜 멋진 해변이 보였다. 시루섬(증도)과 이어진 모래사구다.

시루섬 가는 길. 늘 반겨주는 것이 있다. 하나는 거대한 거북형상 바위, 또 하나는 ‘얼굴바위’다. 고개 치켜 든 거북바위는 이순신장군에게 거북선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바위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아래에 ‘미인바위’다. 함초롬이 단발머리 곱게 빗은 콧날 오똑하고 입술 도톰한 소녀의 옆모습 그대로다.

사구를 지나 섬 가까이에 이르면 길이 없다. 해안에 널부러진 바위를 징검다리 건너듯 이리저리 옮겨 밟고 가야 한다. 얼굴바위를 돌아 섬 뒤편으로 갔다. 일순 숨이 막힌다. 한반도 어디서고 찾아 보기 쉽지 않은 희한한 모습의 바위가 수십길 해안 절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잿빛의 수직 암벽은 억겁의 세월 바람에 패여 바다를 향해 처마를 이뤘고 그 테라스(처마처럼 깍인 바위의 형태)구조는 좁은 바위기둥 사이를 지나 섬의 정남쪽 향에 이르러서는 극대화 되어 그 아래 거대한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섬사람들이 ‘야외음악당’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여기에 앉으니 모든 소리가 음악으로 들렸다. 찰랑이는 파도, 바위 표면에 깨알처럼 달라붙은 소라 고동을 훑는 바닷물, 반(半)동굴 암벽의 이 구멍 저 구멍을 들락이는 바람…. 모두가 악기였고 모든 소리가 음악이었다. 바위벽에서 반향되는 울림도 좋았고 하늘을 배경으로 수평선 위로 피어 오르던 뭉게구름의 느낌도 좋았다. 바람결에 향긋한 꽃내음도 실려왔다. 라벤더(lavender) 비슷한 달콤한 향내. 바위벽 아래 피어있던 하얀 들꽃이 보내준 선물이었다.

<여수〓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생태여행

▽버스투어(무박2일)〓출발 15, 21, 22일. 향일암(예불,

해맞이)∼유람선투어(사도 추도 주변)∼공룡트레킹(사도)∼

해안트레킹(시루섬). 6만5000원.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열차투어(1박2일)〓10월 10일∼11월 10일. 사도, 지리산 피아골 단풍. 서울역∼여수항∼사도∼지리산 피아골∼단풍

트레킹∼연곡사∼구례∼서울역.12만9000원(2인1실 기준).

지구촌항공여행사(www.jigutour.co.kr 02-977-3049)

▶찾아가기〓호남고속도로/순천출구∼17번(국도)∼순천∼여수∼

여객선터미널. 여수항(오후 2시반 출발)↔사도(오전 6시20분 출발) 1시간반 소요(새마을19호) 편도 7200원.

한려해운 061-663-0006. 여객선 민박 예약 및 현지 가이드는

사도전문 여수로여행사(www.yosuro.com 061-686-7776).

▼식후경/사도횟집▼

사도에 단 하나뿐인 식당, 사도횟집. 추도가 내다 보이는 갯가 구옥의 문간에 바다로 창이난 두 평 짜리 방 한 칸에 앉은뱅이 탁자 두 개 놓고 여주인 강양심씨(45)가 푸성귀며 해물로 밥과 반찬을 내는 식당. 그런데 어디를 둘러 봐도 메뉴가 없다.

“오늘은 병어회(무침)뿐이네요.” 근처 바다에서 잡은 독병어 서너마리를 채치듯 썰어 고추장에 버무린 회무침. 그날 그날 손에 잡히는 것이 이 식당의 메뉴다. 그래도 상차림은 푸짐하다. 탱글탱글한 우무(한천), 갓김치, 고동무침, 비말무침 등등….

갓은 여수 돌산도 것이고 우묵은 갯가에서 직접 딴 우뭇가사리로 만들었다. 전날 밤늦도록 바늘로 속내를 뽑아내 무친 고동은 긴 손품 끝에도 겨우 한 접시 뿐이다. 그래도 고동은 나은 편. 자루에 담아 오랫동안 비벼대야 겨우 껍질을 벗겨낼 수 있는 비말(바위에 붙어 사는 갑각류)은 다듬다가 손을 상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

그런 수고가 깃든 귀한 음식이지만 공기밥 외에는 따로 음식값을 받지 않는다.

“돈은 무슨 돈, 그냥 우리 먹는 음식 드린건데….”

다도해 수려한 바다가 가득 담긴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061-666-9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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