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때 소리를 시작했으니 65년이 지났어요. 남겨놓은 것은 노래와 제자들인데, 제자들이 이렇게 축하 자리를 마련해준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수고하는 것이 미안스럽기도 하구요.”
팔순 명창의 목소리는 팔십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정도를 지나 중년 부인처럼 넉넉하고 포근하기까지 했다. 주변에서 “예전과 소리가 전혀 변함 없다”고 평하는 것을 증명하듯, 그는 2부 무대에서 본인의 대표곡처럼 된 ‘태평가’ 등 다섯 곡을 직접 부른다.
“6.25 때 대구 피난시절, 누구 할 것 없이 살아가기 너무 고달팠죠. 요즘 말로 하자면 ‘평화의 염원’ 같은 뜻에서 태평가를 지었어요. 기쁘게도 사람들의 마음에 맞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태평가를 따라 부르니 다들 조금씩은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 시절이 가장 그립네요.”
이번 무대는 특히 그가 부르는 찬송가 순서가 들어 있어 이채롭다. “교회에서는 권사 직을 맡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찬송가를 부른 지도 몇 년 되죠. 후배들 중에는 질색하는 이도 있었지만, 감사할 게 많다보니 꼭 불러야만 했어요.”
이씨는 호적(胡笛)의 명인으로 꼽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국악을 가까이 접하며 자랐다. 원경태 이창배 등 대표적 경기민요 명인들에게 소리를 배웠고, 1940년대 이후 묵계월 안비취와 함께 ‘경기소리 3명창’으로 불리며 흥겨운 민요로 대중들의 시름을 달랬다. 75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됐고, 노령에 이른 최근에도 제자들과 함께 자주 무대에 오르며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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