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나서 둘은 각자 ‘자기 집’으로 전화해 ‘엄마’한테 “걔가 날 미워해” “날더러 인간도 아니래”고 일러바쳤다. 예전 부모들 같으면 “그 정도 일 가지고 무슨 집으로 전화질이냐?” 하고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겠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서 양쪽 엄마들은 “어떻게 내 아이한테 그따위 짓을?” 하며 즉각 달려왔다.
이럴 때 사람이 얼마나 쉽게 즉흥적이고 감정적이 되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여기서 밀리면 안된다는 이상한 피해의식, 어떤 경우에도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조급한 욕망이 뒤엉켜 사람 모양을 순식간에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 사돈지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처음엔 점잖게 나오던 얘기들이 한순간에 갑자기 틀어지더니 이혼 운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더 놀란 건 젊은 커플이었다. 그냥 속상해서 하소연해 본 건데 엄마들이 너무 비장(?)하게 나왔던 것이다. 그게 아니라며 재빨리 둘만의 타협전선을 마련하고 어머니들을 진정시켜 돌아가게 하느라 두 사람은 둘이 싸울 때보다 열 배는 더 힘을 빼야 했다.
이들 어머니처럼 다 큰 자식들 일을 시시콜콜 챙기면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부모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대학생 아들 학점이 왜 이번에 내려갔느냐고 교수한테 항의하는 아버지, 대학 졸업한 딸이 취직시험 보는데 면접고사장에까지 따라오는 어머니, 혼인해 분가까지 한 아들이 직장을 옮긴다고 하자 자기가 나서서 그 회사 사장을 면접(?)하려고 드는 아버지 등등.
이런 부모들일수록 그 심리의 기저엔 자식의 독립을 바라지 않는 강한 의존성이 숨어 있다. 물론 부모 자식 사이의 의존성은 한두 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떤 형태로든(무조건적인 의존이든, 교묘한 조종이든) 자식에 대한 의존도가 심할수록 부모는 자식의 앞날을 계속해서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좋은 부모역할로 착각한다면 진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자식도 떠나보낼 때를 알아야그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