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는 책]박명진 '신의 역사'

  • 입력 2001년 9월 21일 18시 33분


◇ 근본주의의 파괴성

뉴욕 사태로 새로이 부각되기 시작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그의 논지를 비판한 뮐러의 ‘문명의 공존’을 동시에 읽다가 잡게된 책이 환속한 수녀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역사’(‘A History of God’·동연·1999)이다.

헌팅턴의 주장은 의문투성이였다. 게다가 그의 책 뒷부분에서, 서구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이 정치, 군사, 외교 등 다양한 차원에서 어떻게 공조 해나가야 하는가 하는 구체적 정책 대안을 내놓은 대목에 이르면서 관심은 뮐러 쪽으로 갔다. 결국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이 계속 패권을 장악해 나가기 위한 전략을 학술적으로 포장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뮐러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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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의 어두운 단면

그러나 뮐러의 경우도 헌팅턴의 약점에 대한 비판은 조목 조목 훌륭했지만 그의 문명 공존 이론이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못되었다. 헌팅턴이나 이번 사건이나 종교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신의 역사’는 주로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이어지는 셈족계열의 유일신교를 대상으로해서 신의 개념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가를 정리한 역사서이다. 상당히 방대한 자료와 철학 신학 이론들을 살피고 있어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나 역시 완독하지는 못한 상태에서 이 글을 쓴다.

그러면서도 여기에 소개 하는 것은 신의 개념이나 믿음이 사회 발전 단계에서 어떻게 인간의 필요에 따라 달라져 왔는가를 보여주면서 세 유일신 종교의 종교적 근본주의 성격이 결국은 어떻게 같은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재앙적인 범죄에 이념적 근거로 남용되어 왔는지를 밝혀 주는 대목이 특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배타적 신앙은 비극 초래

1970년대부터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세계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근본주의들은 문자적 성서 이해와 배타적 신앙관을 무기로 한 정치적 형태의 신앙운동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보다는 그들이 ‘신의 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반정부 운동과 이슬람 반대자들의 처형에, 유대 근본주의자들은 아랍인들을 폭력적으로 추방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 국가로 건설하는데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헌팅턴은 이번 뉴욕사태 자체는 문명의 충돌로 볼 수는 없으나 사태 수습의 여하에 따라서는 문명의 충돌로 갈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은 반미 의식으로부터 시작된 테러가 반기독교적 움직임으로 발전되어 종래는 그것이 기독교 근본주의를 부추기는 시나리오로 가는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은 결국 두 종교 문명권의 근본주의가 대세를 잡기 전에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책은 이슬람의 근본주의만을 알아온 우리에게 기독교의 근본주의가 십자군 전쟁 이후 얼마나 파괴적인 역할을 해 왔으며 경계해야 할 대상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점에 있어서도 흥미롭다.

박명진(서울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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