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고고학자도 미술사학자도 아닌 임학자였다. 박상진 경북대교수(61·사진). 전공은 나무 세포학이지만 나무 조각을 통해 역사의 베일을 벗겨내는 목질문화재 전문가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최근 ‘궁궐의 우리 나무’(눌와)를 출간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서울의 궁궐에서 자라고 있는 250여종의 나무에 관한 모든 것을 소개한 책.
“궁궐에 가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나무의 대부분이 있습니다. 그 나무에 대한 생물학적 정보, 거기 숨겨진 역사적 문화적 이야기 그리고 궁궐과의 인연 등등, 이런 것을 알고나면 아마 궁궐의 멋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박교수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수십종의 사서에 들어있는 나무에 관한 내용을 샅샅이 뒤져 이 책에 함께 담았다. 그리고 궁궐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일일이 확인해 지도로 만들었다. 나무를 통해 드러나는 역사는 새롭고 흥미롭다 .
“흔히들 우리 나무문화는 소나무문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나무는 조선시대 들어서 번창했고 그 이전엔 대부분 느티나무였습니다. 경북 경산 임당동 원삼국고분, 부산 복천동 초기가야 고분, 신라 천마총 관재(棺材)를 보면 모두 느티나무죠. 고려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16개도 느티나뭅니다.”
박 교수가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일본 교토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그곳에서 연수 중인 미술사학자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를 우연히 만났다.
“거의 매일같이 강 선생을 만나 문화재에 대해 얘길 나눴죠. 한 1년쯤 지났을까, 강 선생이 그러더군요. 목질문화재에 대해서 연구해 보라구요. 순간, ‘그거다’라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귀국 후 그는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한 목선 등 각종 목질문화재에 빠져들었다. 90년대 말엔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팔만대장경판의 60%가 산벚나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요즘 박 교수의 관심 사항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팔만대장경 제작 장소 문제.
“저는 ‘강화도에서 만들어 해인사로 옮겼다’는 기존의 견해를 일단 의심합니다. 팔만대장경 경판의 무게는 무려 280t인데 그걸 해인사로 옮겼다는 것도 그렇고, 나무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해인사 주변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가설이지만요,”
박 교수가 이 난제를 풀어낸다면 팔만대장경 연구에 또한번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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