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양화가 황용엽씨(70)가 25일∼10월13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갖는 제21회 개인전에는 이 같이 인간의 존재론적 슬픔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 30여 점이 전시된다. 이는 아마도 온몸으로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겪어온 그의 인생역정 때문일 것이다.
황씨는 고구려 강서 고분으로 유명한 평남 강서 출신으로 평양미술학교를 다니다 6·25로 학교를 중퇴하고 월남해 국군으로 참전, 부상당하고 제대한 후 뒤늦게 홍익대에 들어가 미술을 공부했다.
많은 죽음들을 목격했고 스스로도 숱한 죽음의 위기를 넘긴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60년대이래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한 인간을 주로 그려왔다. 가위눌린 듯한 인간, 그 뒤로 엄습해오는 악몽의 환영들은 한국인의 역사적 실존적 비극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황씨는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듯 ‘꾸민 이야기’ ‘나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 등의 작품들을 내놓는다. 이들 작품에서 그는 중학생 때 보았던 강서고분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 고분 벽화 속의 산과 들을 재현하고 그 앞에서 고뇌하는 자아상를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고독한 삶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황씨는 “이전보다 좀더 밝은 색조를 쓰고 새로운 조형적 시도를 해보았다”면서 “그러나 이파리 하나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보듯 내 가슴 속 슬픔의 응어리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02-734-0458, 5839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