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대는 플레이어에 판을 얹은 후 현실로 채워진다. ‘카르멘 판타지’의 피날레에서는 활과 악기가 부딪치며 불꽃을 일으키는 듯하다. 극한의 고음(高音)에서 내보이는 정확한 음높이가 ‘연주기계’로서 그의 정확성을 일깨워준다. 당기고 늦춰주는 템포는 철저한 계산에 의해 제어되어 있다.
튀는 듯한 불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스네 ‘타이스의 명상곡’은 의심할 바 없이 이 소품을 다룬 고금의 명연 중에서 정상에 속한다. 70년대 카라얀 ‘오페라 간주곡집’에서 베를린 필 악장 미헬 슈발베가 보여주었던 온화함과 엄정함을 뛰어넘는다. 주선율과 중간부 선율이 교차하는 부분의, 눈물을 머금는 듯한 미음(美音)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아쉬움도 있다. 마지막 곡으로 마련된 ‘치고이네르 바이젠’에서 프리스카(빠른 무곡) 부분은 훨씬 템포를 당겨 악마적인 면모를 짙게 드러냈어도 좋았을 것이다. 중용을 택한 의도는 짐작할 수 있지만 개성 없는 연주가 되고 말았다.
지휘를 맡은 플라시도 도밍고는 무리 없이 호흡을 잘 맞추어 주었다는 점에서 칭찬 받을 만하다. ‘치고이네르 바이젠’ 후반부에서 너무 두텁게 합주 음색을 처리했지만, 책임은 녹음 엔지니어와 나눠가져야 할 부분이다.
“사라(장영주)는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다. 매력과 우아함, 빛남, ‘재미’의 감각을 모두 갖추고 있다.” 녹음이 끝난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도밍고는 모든 음악을 그 근원인 인간의 음성과 연관시키는 재능을 가진 분이죠”라고 장영주가 화답했다나.
베토벤 로망스 F장조, 바흐 ‘G선 위의 아리아’, 라벨 ‘치간’ 도 함께 실렸다. EMI 발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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