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安 貧 樂 道(안빈낙도)

  • 입력 2001년 10월 9일 18시 32분


安 貧 樂 道(안빈낙도)

貧-가난할 빈 榮-영화 영 聖-성인 성 亞-버금 아 應-응할 응 夭-일찍 죽을 요

무엇이 幸福(행복)인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衣食住(의식주)가 足하고 나아가 富貴榮華(부귀영화)까지 누릴 수 있다면 일단은 幸福하다고 여기는 게 俗人(속인)의 幸福觀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만 개의치 않고 八字려니 여기면서 기꺼이 順應(순응)하며, 더 나아가 聖人(성인)의 道(도)를 좇아 즐겁게 산다면 확실히 凡人(범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孔子(공자)는 일생 동안 무려 3000명의 弟子(제자)를 두었는데 그 중 뛰어난 弟子가 77명, 다시 가려 뽑은 자가 10여명이었으니 가히 首弟子(수제자)라 할 만하다. 그 중 다시 가장 뛰어난 弟子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顔回(안회)를 꼽아야 할 것이다. 그는 孟子와 함께 亞聖(아성)으로 불린다.

물론 孔子가 가장 총애했던 弟子도 그였다. 孔子와 같은 魯(노)나라 사람으로 字(자)가 子淵(자연)이라 일명 顔淵(안연)이라고도 한다. 어찌나 열심히 학문을 익혔는지 나이 29세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孔子의 評에 의하면 그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으며 특히 德行(덕행)에 뛰어나 스승인 자신이 때로 배웠다고 할 정도다.

“나는 종일토록 顔回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한 마디 道에 어긋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물러가서 내 자신을 반성해 보아도 역시 배울 점이 많았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것. 그래서 평생토록 끼니 한 번 제대로 잇지 못했고 지게미조차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누구를 탓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현실에 順應하면서 聖人의 道를 추구하기에 열심이었다.

‘참 장하구나 顔回여! 보통사람 같으면 견디기 어려워하거늘 너는 가난을 예사로 여기면서도 여전히 聖人의 道를 즐겨 좇으니 이 얼마나 장한가.’

孔子의 칭찬이다. 그러나 그런 顔回였지만 29세에 백발이 되더니만 31세에 夭折(요절)하고 말았다. 孔子가 하늘을 원망하면서 통곡했다.

‘아! 하늘이 나를 망쳤구나.’

극진히 아꼈던 제자가 갑자기 죽었으니 그의 심정을 이해할만도 하다. 孔子는 평소 그를 아들처럼 생각해 오던 터였다.

孔子가 그를 높이 평가한 까닭은 그의 安貧樂道에 있었다. 그것은 곧 聖賢(성현)의 道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후에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의 孔子弟子列傳에서 顔回를 제일 앞에 세웠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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