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시대와의 불화가 소설의 업”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6시 22분


소설가 이문열씨가 10일 작품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아침나라)를 냈습니다. 단편집으로는 여섯번째 작품으로 <아우와의 만남> 이후 7년만입니다.

이 책에는 최근 ‘곡학아세’ 논쟁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힌 표제작을 비롯해,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실렸던 <김씨의 개인전>, 전작 <그 여름의 자화상> 등 신작 3편, 그리고 <달아난 악령>(1996) <하늘길>(1997, 2000년 개작),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1998) 등 모두 여섯 편이 실려 있습니다. 중견작가로서의 내공을 가늠할 수 있는 다채로운 작품들입니다.

짐작컨데, 문학성보다는 몇몇 작품들이 내장한 정치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 이 씨 그리고 이씨 작품에 대한 찬반이 엇갈릴 것입니다. 이미 논란이 됐던 표제작을 외하고도, 해방직후 2-3일간의 풍경을 스케치한 <그 여름의 자회상> 역시 시비거리가 될 만 합니다. 황장엽씨의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에서 서사의 기본틀을 빌린 이 소설에서는 자력으로 해방을 이루지 못한 우리 민족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친일파의 범위와 규정을 둘러싸고 논쟁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달아난 악령>은 창작 당시 활발했던 이른바 ‘후일담 문학’(즉 운동의 결과는 실패했을 지언정 그 시대와 정신은 순수했다는 식의)에 대한 “대증(對症)의 의미”를 부여한 작품입니다. “80년대가 과연 과장과 미화의 대상일 뿐일까하는 의문으로 쓰게 된 소설”이라고 이 씨는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대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문학적 대응이라는 대의는 그 자체로는 미덕이겠으나 각론에서는 읽는 이의 판단 기준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씨 본인도 바라는 바지만, 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문학적인 완성도’에 대한 한 중견작가의 고민과 분투는 별도의 평가가 있어야하리라 봅니다.

이들 작품에 가려져 있지만 주목할 만한 스타일의 작품도 여럿입니다. 지난해 e북으로도 발표된 <하늘길>은 우리 민담을 골격으로 한 ‘우화 구도소설’이며, <김씨의 개인전>은 예술 혹은 예술가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울림 깊은 소품입니다. 그리고 21세기문학상을 받았던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은 “IMF 초입의 우리 사회를 거품이란 상징으로 두루 살핀” 작품으로 이씨의 감상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출간에 맞춰 10일 낮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는 출판사가 주최한 기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씨는 20명 가까운 기자들과 1시간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은 그 자리에서 오갔던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표제작은 어떻게 구상하게 된 것인가요?

=근자에 중국 고전을 다시 읽으면서 의고체 문장이 주는 맛에 빠졌어요. 작품 시작부터 남 이야기하듯하다가 마지막에 “그게 바로 나다”는 구성은 <귀거래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구양수의 <취옹정전>에서도 늙은 태수의 이야기를 죽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가서 “늙은 태수는 누구인가. 나, 구양수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항간에는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의 ‘의도’에 대해 말이 많은데.

=원래는 낙향해서도 몸 둘 곳 없는 40-50대의 처지를 읽고 쓸쓸한 기분을 느껴보라고 쓴 것인데, 도리어 화를 내시더군요(웃음). 신문에서 논란이 되길래 원고량을 따져보니 전부 121매중에 시비가 되는 부분은 20매 정도에 불과해요. 거기만 초점을 맞추니까 오해들을 하시는데, 사실 저는 이 작품이 사회적인 논란거리가 되는가…하는 의심도 합니다. 이 작품을 쓸 때의 기분은 나를 공격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 같은 것은 아니었어요. 나이 먹고서도 세상과 불화하여 심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제 꼴에 대한 자조랄까… 그런 것이었죠.

-작가가 최근 겪었던 실제 논란을 곧바로 소설에 담았기 때문에 곡해의 소지가 많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대부분 제 작품은 경험한 시점과 시간차가 5-10년씩 나는데, 이 작품은 경우는 한 달밖에 안되거든요. 그러나 그 시기는 소설의 목적과 상관없고, 주요한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소설이 다 최근의 경험을 담았냐하면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30년전 기억이 20매, 그로부터 20년전 기억이 다시 20매, 20년 이후 지금까지가 또 20매… 단편소설은 압축미가 있어야겠기에 의식적으로 시간을 분배해서 쓴 것이예요.

그리고 보면, 전 아직도 소설가의 진가는 단편에서 드러난다고 보는데, 경제성으로 따지자면 단편은 나빠요. 근래에 단편 세 개 쓰는데 꼬박 2달이 넘게 걸렸으니… 제가 <시인>을 쓴 것도 두 달밖에 안 걸렸거든요.

-작품 결말을 불화하는 세상으로 돌아갈 것인지, 말 것인지 애매하게 처리했는데…

=왔다갔다 하는 거지요. 갈 수도 없고 올 수도 없고.

-그런데 굳이 세상과의 불화를 이씨 본인의 이야기로 쓸 필요가 있었습니까. 다른 인물을 내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요.

=저도 고민이 바로 그거였어요. 애당초에는 갈등구조를 새로 만들 생각으로 이러저러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잘 살아오다가 다 때려치고 낙향한 이유”라는 갈등의 주체로 요즘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중년의 직장인을 내세울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유장한 의고체 문장의 맛을 살릴 방도가 없더란 것이죠. 그런 난감함이 있었고, 뻔히 ‘나’를 내세우면 쉽게 쓸 수 있는데… 하는 유혹도 없지 않았구요.

-‘곡학아세’ 논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지금 소회는 어떠합니까.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듭디다. 내 감정조절이 잘못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추미애 의원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제가 정치인으로서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처음 문제가 된 발언은 실수였다고 치더라도, 같은 실수를 두 세번 반복한다면 실수로만 보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번 문예진흥원 국정감사에서 통일문학전집에서 제 작품을 빼라고 주장했던 최재승 의원은 후에 개인적으로 제게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그런데 추 의원은 저에게만은 사과를 하지 않더군요. 내가 힘없는 글쟁이라서 저를 무시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에 미치니 더욱 감정을 절제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제작 뿐만 아니라 전작으로 실은 <그 여름의 자화상>도 친일파의 개념규정과 그 범위 확정이란 점에서 시비거리가 될 수 있을 듯한데요.

=실은 처음에는 논란거리가 더 될만한 대목이 있었는데, ‘부악문원’(이씨가 문학지망생들을 사숙시키며 고전 강독과 창작 연습을 하는 곳) 학생들과 합평회를 했는데, 너무 과한게 아니냐고 지적한 부분은 뺀 겁니다.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많이 들 이야기 하는데, 해방 직후부터 미군정이 들어설 때까지 기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헌병대에게 많이 죽었다고들 해요.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이런 식의 해방은 없었던 것이거든요.

8월15일 해방이 됐다고 하지만 그때 일본인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이런 것이었어요. “우리는 미국안테 항복했지 조선에 항복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 것이죠. 이것을 해방 직후 2-3일간 징용자 출신의 한 사람의 시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원래는 서사의 기본틀은 황장엽씨의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에서 빌려온 것이예요. 거기서는 일제에 빌붙어 동포를 괴롭히던 형사를 처벌해려다 놓친 것에서 끝났는데 저는 그걸 더 진전시킨 셈입니다. 해방이 됐다고 트럭에 몰려 타고서 서울로 의기양양하게 가는데 뒤에서 일본 헌병의 지프차가 따라온다…. 아마 찬물 뒤집어쓴 기분일 겁니다.

-이 소설에는 무엇보다 친일파의 범주 설정에 대해서 시비거리가 될 법도 한데요.

(참고로 문제의 대목은 주인공이 술집에서 만난 징용자 출신의 취객의 하는 말입니다. “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총독부에 들어가고 시청에 들어간 거 어디 왜놈들에게 충성하자고 들어갔나? 배운 밥벌이가 그 길밖에 없어 그런 거 아냐? 모르긴 하지만, 우리 같은 것까지 처단하려면 조선 사람 절반은 친일파로 처단해야될 걸. 아니, 자칫하면 친일파가 더 많을 지도 몰라. 그러니까 마음 턱 놓고 술이나 마시라구. 소수가 다수를 처벌할 수 없는 법이야.”p.289)

=제 생각은 친일의 범위를 좁혔어야 한다는 것이죠. 일제에 부역한 말단 면서기까지 친일분자로 몰아세우면 친일파가 다수가 되어버립니다. 소설에도 썼지만, 소수가 다수를, 약자가 강자를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제 생각에는 해방 직후 친일파를 몇 십, 몇 백 명 선으로 줄여서 과감하게 처리했어야지, 감정적으로 대다수를 친일파로 몰아세우면 도리어 그들의 힘만 결집시킬 뿐이라는 것이죠.

(*이씨가 이런 생각을 피력한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의 취객중 한 명이 내뱉은 다음과 같은 “어이없는 걱정”이 주인공에게는 “오히려 절실하여 섬뜩하게 들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금 모두 감정만 앞세워 친일, 친일파, 하고 떠드는데 나는 정말 걱정되네. 이러다가 정작 처단해야 할 악질 매국노까지 다 빠져나가게 만들고 마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 엄밀하게 정도와 범위부터 규정해 친일파를 무력한 소수로 만들어놓고 처단하든지 말든지 해야하는데… 지금같이 중구난방으로 범위를 확대해 면서기에 지서(支署) 소사(掃使)까지 친일파를 만들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나라 팔아먹고 동족 때려잡아 떵떵거리며 살던 놈들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얼씨구나, 다 빠져나가고 말지…” p.290)

-머리말을 보니 1996년 발표한 중편 <달아난 악령>이 당시에는 무시당했다는 섭섭함을 드러냈던데, 그 곡절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그걸 쓸 당시에는 소위 ‘후일담 문학’이란 것이 성할 때였어요. 그러니까 80년대 운동은 결과로서는 실패했으나 그 동기나 취지를 다소 휘양하게 드러낸 것들이었죠. 그런데 저는 ‘후일담’이면 반성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달아난 악령>은 그런 ‘후일담 문학’에 대증(對症)의 의미를 갖는 ‘내 나름의 후일담 문학’인 셈이죠. 그런데 아무도 이를 주목해주지 않았어요.

-이 작품 직전에 발표한 <사로잡힌 악령>(당시 시인 고은의 행적을 비판했다고 알려진 작품)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로잡힌 악령>이야 내 작품 목록에서 완전히 빼버린 것이니까 재론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문열씨는 너무 시류에 참여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 여름의 자화상>이나 <달아난 악령> 정도가 당시 현실에 대한 소설적 대응이었지 나머지는 시류나 세태와는 무관합니다. 이 책만 봐도 <김씨의 개인전>이나 <하늘길> 같은 예술소설과 우화소설이 있지 않습니까. 저보고 자전적 내용을 소설로 쓴다고들 하는데, 지금까지 제 체험을 소설화 한 것은 3분의 1이 채 안될걸요.

그런데 제가 늘상 현실 참여적인 작품을 쓰는 것으로 오해들 하시는 이유는, 몇몇 제 글들이 첨예한 갈등의 부분을 건드려서 더 많아 보이는 느낌일 겝니다.

-그런 ‘첨예한 갈등’에서 발을 빼고 싶지는 않습니까.

=사실 제가 ‘충돌하는 기관차’에 비유해 정권과 언론의 충돌을 우려한 조선일보 칼럼과 일부 시민단체의 석연 찮은 행위를 ‘홍위병’에 비유한 동아일보 칼럼 이후에 저는 이 문제에 대해 한 자도 쓰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그러할 생각입니다.

-정권과 깊은 불화를 겪고 있는데, 이 정권을 한 ‘시대’로서 인정하십니까.

= 저는 이 정권이 한 번 지나가는 현상에 불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가 다른 어떤 것으로 지나가는 중요한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정권과의 불화는 개인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정권 초기부터 그렇게 불화한 것도 사실 아니었어요. 지난 일이라 세세하게 말씀을 드리지 못하지만 친 정권적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한 때 제 소설 <사람의 아들>이 운동권 의식화용 책으로도 많이 읽히지 않았습니까(웃음).

그런 제가 소위 말하는 ‘운동권’과 돌아선 것은 아마 87년경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86년부터 저는 반동작가로 찍혀 있었어요. 이들이 <영웅시대>를 반공소설로 규정하면서부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다가 89년부터는 제가 이들의 주적으로 떠올랐지요.

지금은 좀 덜하지만, 얼마전까도 이 정권, 이 시대에 대한 깊은 우려를 가졌던게 사실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적’이란 개념이 너무 확대되어 가는 것입니다. 얼만전만 해도 ‘적’이라면 자신의 주의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을 칭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기 주의주장에 적극적으로 찬동하지 않으면 다 ‘적’으로 몰아세우는 듯합니다.

-홈페이지 인터넷 게시판을 폐쇄했는데, 다시 열 생각은 없습니까?

=몇 년간 그럴 일을 없을 겁니다. 제가 거기서 배운 것은 젊은이들과의 의사소통이 끊어짐을 느꼈다는 것 뿐입니다. 형태만 쌍방향이지 실지로는 일방적인 주의 주장만이 난무하고, 도무지 대화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특히 잘못된 사실을 자꾸 사실인양 확대 재생산하는 것도 문제예요. 일례로, 몇 해전에 월간 <말>지에서 제가 방북한 임수경씨를 “미친년”이라고 했다고 오보를 냈어요. 당시 인터뷰한 기자와 인터뷰 녹화 테이프를 돌려가며 확인을 했습니다. 보니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다음달호에 정정기사와 사과문이 나갔어요. 그런데 오보는 크게 쓰고 정정기사는 귀퉁이에 조그맣게 쓰니 누가 제대로 사실을 알겠습니까. 자료 인용이 정확한 강준만 교수 같은 이도 이 오보를 인용하더란 말입니다. 그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가 봅니다.

-독자중에는 이씨 작품 중에서 <김씨의 개인전> 같은 예술소설이 정치적인 메시지가 들어간 작품보다 좋다고들 합니다. 본인 생각은 어떤지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김씨의 개인전>에 대해서도 이러저러한 오해가 많던데요(웃음). 누구는 옆집 사는 조각가를 비방하기 위해서 썼다는 둥, 또 누구는 예술가의 조수에 불과하면서 예술가연하는 김 씨를 통해서 수준 미달인 작가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려고 했다는 둥…

사실 제 작품은 예술소설이라고 치더라도 어딘가 현실 대응적인 면이 있을 것입니다. 소설이란 것이 원래 현실에 대응하는 예술장르가 아니던가요.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치가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사람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죠. 다만 저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이 점이 확대 해석되는 경우가 많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 삶의 실익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기도 하구요.

-민감한 질문입니다만, 여러 사람들은 이 씨가 왜 스스로 흠집을 내느냐, 다른 작가처럼 조용히 있다고 문학적 위업이 깍이는 것도 아닌데, 라면서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말씀 들으면 다소 억울하긴 합니다만, 의식 있는 작가로서 한 사회에서 역할을 애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홍위병’ 칼럼으로 여러 시민단체가 저를 원한으로 삼고 있다고들 해요. 실지로 그런 이야기를 들을까봐 활동의 제약이 많다는 것이지요. 그 글은 우리사회의 의사결정 방식이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진심으로 걱정스러워서 쓴 글이예요. 물론 지금은 다소 안심이 되지만 당시로서는 크게 우려됐던 것이 사실입니다.

-혹시 이 씨에게는 한양 조정(朝廷) 알기를 우습게 생각했던 영남 유림 선조의 피가 흐르는 것은 아닌지요?

=그런 건 없습니다.(웃음) 예전엔 영남 지역에 만민소가 많았답니다. 우리 선조중에는 만민소 소두를 한 분이 한분 계시긴 합니다(웃음).

-이 씨는 작품을 쓰면 부악문원 제자들에게 읽히고 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 작품은 많이 보시는지요.

=글쎄 35세 이하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사실 봐도 잘 모르겠습디다. 그런데 다만 너무 빨리 자기규정을 하는 것 같아요. 나이 마흔도 안됐는데 글만 보면 누구 건지 대번에 알 수 있는 데다, 어떤 때는 작품의 주제까지 비슷하니… 요즘 작가들은 어떤 주제로, 어떤 스타일로 말하는지 금새 파악되어져요. 이 점은 문학에 대한 진지한 태도일 수도 있으니, 글쎄 꼭 나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요.

최근 쓴 세 편의 소설을 보시면 알지만, 저는 지금도 각 글의 양식이 겹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거든요. 문체 표현기법 등을 바꿔가며 색다른 작품을 만드느라 고심을 하는데…

-이씨 본인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습니까.

=지금은 특수상황이라서 그렇지만(웃음), 문학을 선정적으로 다룬다는 느낌이 듭니다. 문학 기사란 원래 문학성에 대한 천착이 먼저고, 논쟁거리나 정치적 부분은 나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을 기사화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대표성이나 객관성이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공인해주는 셈이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멀지 않아서 에세이집을 하나 내야 합니다. ‘주제가 있는 잡문집’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장편 소설은 쓰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 다음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세상 시름을 잊고 제 작업에 몰두할 생각입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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