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시간여 후 카타르의 텔레비전 방송 알 자지라에 나타난 오사마 빈 라덴은 “모든 이교(異敎)의 군대가 모함마드의 땅을 떠나기 전까지는 미국이 결코 평화로울 수 없을 것을 신께 맹세한다”고 다짐하며 “신은 위대하다. 영광이 이슬람에 있기를…”이라는 말로 성명을 끝맺었다.
포성과 비명으로 얼룩진 전장 한 가운데서 신은 과연 누구의 영광을 축복하실까. 누구의 피흘림에 눈물 흘리실까. 기독교도도, 이슬람도 “신은 오직 한분”이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그 한분 뿐인 신은 누구란 말인가.
‘예수는 없다’의 저자인 비교종교학자 오강남교수(吳剛男·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과·60)를 만나러 가는 길, 기자의 머릿 속은 그런 질문들로 어지러웠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오교수가 숨돌릴 틈도 없이 자칫 ‘문명충돌’ 양상으로 확전될 것 같은 현실의 어지러움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21세기를 지배하는 부족신관
-나의 신이 나를 승리로 이끌 것이며, 나의 정의로움을 보증한다는 믿음들이 맞부딪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세기를 살면서도 여전히 부족신관(部族神觀)에 사로잡혀 있는 거죠. 신이 자기들만의 신이라고 생각하고 그 신에게서 용기와 확신을 얻어 이웃을 무찌르고 자신의 독단을 절대화하는 것. 성경의 구약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직접 전투지휘관이 돼 다른 민족을 정벌하는 출애굽기가 있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천년전 부족사회 사람들의 신관(神觀)에 비친 하나님일 뿐 하나님의 본성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부족사회적인 신관을 현대인이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거죠. 그 누구도 낡은 과학, 낡은 학문은 원하지 않으면서 왜 종교는 낡은 것이어도 된다는 건지….”
-십자군전쟁이나 신구교 간 전쟁같은 역사 저편의 종교전쟁들이 있지만 어쩌면 21세기의 이 전쟁이 후대에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종교전쟁’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듭니다.
“이슬람과 미국의 대결을 종교적인 것으로 보아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지만 종교가 할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듯이 종교란 사람을 부드럽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것이라야 하는데 지금은 명백히 그와 반대의 방향이니까요. 서구에서도 그런 신관의 한계를 깨달아 빛이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식의 초(超)이분법적인 사고의 동양종교에서 무언가를 배우자는 흐름이 이어져 왔던 것이죠.”
교수는 비교종교학자다. 가을 학기에 서울대와 서강대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하기 위해 잠시 한국을 방문했을 뿐, 71년 캐나다로 유학가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그곳 대학에서 가르쳐왔다. 그렇게 한국으로부터도, 한국교회로부터도 멀리 있는 그가 ‘예수는 없다’(현암사)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 한권으로 한국사회에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5월30일 초판1쇄가 발행된 이 책은 10월10일 현재 13쇄째가 발간됐고 4만5000부 정도가 팔렸다. 대중용이라고는 하되 종교이해 입문서 성격인 책이 짧은 기간 이만큼 팔려 나간 점이나 책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상치않다.
현암사의 형난옥 주간은 “출간 후 한동안은 기독교 신자들의 항의전화로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요즘은 묘하게도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교회에서 사는 것이니 단체구매를 하면 할인해 주느냐’고 묻는 경우가 잦다”고 말한다. 대진대 한신대등 신학대학에서는 단체로 수백부를 사갔고, 현장 목회자인 홍근수목사(향린교회)는 공개서평에서 “초인적인 용기를 갖고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월간 ‘인물과 사상’ 10월호)이라고 오교수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찬사는 오히려 소수다. 오교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로부터 ‘배교자(背敎者)’로 지목된다. 기독교인인 누님들조차 길 잃은 막내동생의 영혼이 어디로 갈지 전전긍긍이다. 그는 어쨌든 “역사적 예수는 있었으되 오늘날의 교회가 가르치는 그런 예수님은 없으셨다”고 불경스런 도전장을 던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가 나가고 있는 캐나다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의 총회장 빌 핍스는 97년 취임 직후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다, 예수가 하나님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그럼에도 교단은 그를 축출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말한 예수님의 행적을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조건없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그 명령을 지금 이 세상에서 수행한다면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그의 태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제도화된 종교들이 교리에 대한 의문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습니까.
“저는 교회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북돋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나 독립적 사고력, 생명력을말살시키는 종교는 피해야 합니다.”
-인간중심의 해석을 하자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인간이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것이 모든 종교의 궁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종교를 믿느냐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죽이고 어떻게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가가 진정한 변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리는 내 안에서 자라가는 것이며, 내 안에서 불꽃을 일으키면서 내 것이 되어가는 겁니다.”
#성불하신 예수
오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 교회 문턱을 넘었다. 스스로 선택해서 미션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종교학과에 진학해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의 믿음은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이슬람이 모두 지옥으로 간다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게 사실인 걸….”이라는 것이었다.
러나 캐나다 유학을 한 후 그곳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워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한문을 다시 공부해 노장사상과 불교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그는 자기 안에서 ‘기독교와 타 종교가 대화하는’ 핵융합의 과정을 겪게 된다. 예수님의 성령체험이 ‘성불(成佛)’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노장에서 말하는 ‘붕새처럼 변화와 초월의 체험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아니겠냐는 인식이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기독교 사상 이외에는 불교 전공 교수조차 채용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가보니 이미 60년대부터 구미의 종교학과들은 불교 힌두교 이슬람들을 다 교과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더군요. ”
불교와 노장사상을 넘나들며 ‘화엄(華嚴)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는 자기 안에서 진행되는 종교 간 대화를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에 ‘진리를 향해 가는 길에 하나의 방법(기독교)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 종교가 길벗이 돼야 한다’라는 요지의 종교칼럼을 연재했다. 이 글은 보수적인 교리해석자들에게는 반발을 불러 일으켰지만, 독자들 사이에 ‘길벗들의 모임’이라는 자생적인 연구공동체가 생겨나기도 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8년째 진행되는 이 소모임에서는 매해 여름 8주간 종교도 나이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노자, 장자, 반야심경, 기독교의 심층이해, 주역 등 다양한 종교관계 책을 읽고 토론해 왔다.
-왜 다른 종교와의 대화가 중요합니까.
“우리가 하나의 종교만으로 진리를 다 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얘기함으로써 진리의 진면목을 더욱 잘 보자는 것이지요. 낡은 이분법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내 것이 진리이면 네 것은 거짓이라고 단정합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종교다원주의의 ‘다’자만 얘기해도 난리가 난다고 합니다. 모두가 똑같지 않으면 견디질 못하는 거죠. 모두 같은 생각을 해야하니 교인은 한없이 늘어야 하고….”
-오교수님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보좌 위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하나님, 나뭇잎과 풀잎 속에도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교회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종교관은 사람 편에 서는 것입니다. 만약 신이 절대적인 존재라면 뭐가 부족해서 우리(인간)의 노래와 돈과 찬양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찬양하는 겁니다. ”
-오교수님은 기독교인이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해 오더군요. 기독교인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 멤버십을 획득할 수 있습니까. 저는 스스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교수는 머지않아 지금껏 글로만 서로를 알아온 미국인 승려 현각을 만날 계획이다. 신부가 되려다 부처의 가르침을 만나 스님이 된 현각을 오교수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이”라고 평한다.
우연일까. 두 사람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경구절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32절)이다.▼약력 ▼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1970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대학 원 박사과정 수료.
▽1971년 캐나다로 유학.
▽1976년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 으로 박사학위 취득
▽1980 이후 년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비 교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등에서 객원교수.
▽저서 ‘길벗들의 대화’(1983) ‘도덕 경’(1995) ‘열린 종교를 위한 단상’ ‘장자’ 번역서‘살아계신붓다,살아계 신그리스도’ 등.
▼가수 조영남이 본 오강남 교수▼
가 오강남교수를 만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글로서가 먼저였다. 목사가 되겠다며 미국에서 신학대학을 다니던 시절, 미주지역 순회공연을 했던 80년으로 기억한다. 공연을 마치고 우연히 누군가가 소일거리로 읽으라며 던져준 교포신문에서 그의 칼럼을 읽고는 섬뜩해졌다. 당장 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나섰고 새벽에 그가 내 방문을 두드린 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는 내게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한국인의 생각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 특별한 사람이다. 내가 종교에 관해 쓴 유일한 책 ‘예수의 샅바를 잡고’는 그와의 만남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의 논지의 섬뜩함은 바닥까지 내려간 휴머니즘이다. 물론 그의 휴머니즘적인 종교 이해에 앞서 함석헌선생같은 분이 계셨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서 오교수만큼 자유로운 이는 없었던 것 같다. 오교수에게는 그에 더하여 다원(多元)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오교수의 생각에 영향받은 이는 여기저기 곳곳에 퍼져 자기들 나름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간다. 그의 책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소설가 이윤기도 그 중 하나일 터. 나는 노래와 그림으로 그를 실천해나갈 뿐이다.
<만난사람〓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