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주인집 아들 위해 뒤뚱뒤뚱 '나비를 잡는 아버지'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8시 33분


나비를 잡는 아버지/현덕 글·김환영 그림/38쪽 7500원 길벗어린이

밤나무 그늘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바우는 속이 상하다. 서울에서 온 경환이의 행동이 영 거슬린다. 같이 학교를 다닐 때는 자기보다 못하던 녀석이 서울로 유학을 가더니 훨씬 멋있어 진 것 같다. 나만 시골에서 땅이나 파며 살게 되는 건 아닐까. 모든 걸 경환이보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마름의 아들과 소작인의 아들이라는 현실의 무게는 무겁다. 바우는 자기네 밭에서 나비를 잡는다고 참외 줄기를 망치는 경환이와 싸운 덕분에 소작을 떼일 위기를 맞고, 사과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집을 나와 뒷산에 올라가니 아버지에 대한 야속함과 노여움이 더하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멀리서 나비를 잡으려 뛰어 다니는 사람이 보인다. 경환이인가, 그 집 머슴인가, 가까이 가니 걸음도 똑똑지 못한 아버지였다. 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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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학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 1930년대 쓴 작품이지만 아직도 이 작품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현덕’이라는 작가가 가진 우리말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쉬운 말로 썼지만 결코 그 내용은 가볍지 않고 더구나 어른들의 생뚱한 교훈적인 가르침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요즘 많은 어린이 책이 쏟아지면서도 크게 눈에 띄는 책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린이 책을 단지 쉬운 읽을 거리로만 생각하는 때문은 아닐까.

이미 중학교 대체 교과서로 나온 ‘우리 말 우리 글’에도 실릴 만큼 많이 읽혀진 작품이지만 김환영의 그림과 함께 보는 맛은 또 색다르다. 30년대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듯한 건조한 색채와 한없이 고개가 움츠러들지만 ‘정자나무통처럼’ 뻣뻣하기도 한 바우의 모습이나 다른 또래 보다 목 하나는 크지만 건방이 몸에 밴 희뜩한 모습의 경환의 그림은 그림 작가가 해석한 동화의 모습인 것 같아 재미있다.

특히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는 바우의 눈매는 그림 작가의 주인공에 대한 애정인듯하다. 그 눈매가 마지막 서툴게 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눈매와 너무 닮아 가슴이 아프다. 바우는 아버지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살아 갈 것이다. 그런데 혹여 아버지의 고달픈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은 유아용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에게 이 책은 참 어려울 것 같다. 아버지의 삶에도 한번 관심을 가지는 나이의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이다. 큰 아이들에게도 그림책이 주는 또 다른 재미를 흠뻑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책이다.

김 혜 원(주부·서울 강남구 수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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