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동안 병원에 며칠 다닐 일이 있었는데 담당의사의 진료시간에 맞춰 오전이나 오후 한차례 집을 나설 때마다 가방 속에 넣어갔던 책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마음산책·2001)이었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이 산 속에 혹은 폐교에 숨어들어 세상과는 단절된 채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찾아가 그들의 세계와 그들의 삶을 기록해놓은 책이다.
오로지 그림으로밖에 자신을 내세울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삶은 간절하고 때로는 처절하다. 세상이 그들을 피해 가는 것인지 그들이 세상을 피해가는 것인지, 낯설고 빈곤함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오로지 그림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는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나는 간호원의 호출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읽었다.
비록 독서로일 뿐이지만 이름 없는 화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일은 타자의 낯선 삶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도 들었다. 그들은 경주 산 속의 사찰 소유지로 되어있는 옛 서당자리를 작업실로 쓰고 있거나, 그만한 거처도 없이 전시 비용을 벌기 위해 뱃일을 나가거나,아니면 시골의 초등학교 교실 한 칸에 들어앉아 있으므로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 어떤 이는 혹, 세상의 인간들과 교신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기미조차 보인다.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들의 삶이 정녕 낯설기만 한 것이냐? 그들의 몰두, 그들의 불안, 그들의 남루는 서로 어우러져 종소리를 만들었다. 우리가 때때로 간절히 귀기울여 듣고 싶은 그 종소리 말이다. 종은 보이지 않지만 그 소리는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울려 퍼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은둔함으로서 아름다운 종이 되었다. 시간의 부식을 견디고 살아남아 머나먼 타자의 내면 속에 그 종소리는 울려 퍼질 것이다.
오로지 그림으로만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그들은 강변하지 않는데도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이루고 허물고 다시 구축하며 절대고독에 놓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거슬러내려 오는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예술가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내게 그들의 세계를 탐색하는 일은 고통이며 성찰이며 숙연함이었다. 간호원이 내 이름을 부르는 줄도 모른 채 김근태나 김명숙의 세계 속으로 쑥 빠져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신경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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