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대형서점 잇단 인수 전재국 시공사 사장 인터뷰

서울 강남에 있는 출판사 시공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 전재국 사장실에서는 밤늦도록 회의가 한창이었다. 문밖으로는 흘러나오는 소리 대부분은 전 사장의 목소리였다. 이달 중 서울 구로동의 한 신축백화점에 문을 열 예술전문서점 아티누스 2호점 인테리어 문제가 의제였다.

전 사장에게 만나고 싶다고 얘기해놓고 2주를 기다려야 했다. 어렵사리 잡은 약속 시간도 밤이 늦어서였다. 전 사장의 잦은 사업미팅과 중국 출장 때문이다.

시공사 설립 12년째. 그간 전 사장은 늘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결국 전두환 전대통령의 장남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시공사를 연매출 300억원이 넘는 중견출판사로 성장시켰다.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등 굵직한 기획은 모두 전 사장 작품이다. 당연히 직원들의 충성심이 여느 출판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그리고 그는 최근 몇 년간 을지서적(서울 을지로) 화정문고(경기 고양시 일산) 을지분당점(경기 성남시 분당) 등 9개 서점을 인수했다. 2000년 8월 서점 사업을 총괄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인 ‘리브로’(자본금 70억원)는 지난달 인터넷서점 ‘북토피아’의 북몰 부문을 인수했다. 이용자의 마일리지(1억2000만원 상당)를 떠맡는 조건이었다.

이를 두고 출판계에서는 “전 사장이 큰 일을 벌이는 모양”이라는 얘기한다. 지난해 시공사가 책 도매상인 동국출판에 지분 20%를 투자했을 때도 “전 사장이 도서 유통을 장악하려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금도 출판계에서는 “전 사장이 종국에는 미디어 그룹을 꿈꾼다”는 쑥덕거림이 있다.

과연 전 사장의 ‘식욕’의 끝은 어디일까. 피로로 눈이 잔뜩 충혈된 전 사장은 자신감있게 말했다.

“멀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2년간은 온-오프라인 서점을 연계한 서비스를 개발해 ‘리브로’ 이용자를 늘리는 것이 제 일의 거의 전부입니다. 3∼4년내 서점 중 처음으로 코스닥에 등록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그는 “시공사의 현재 여건상 ‘리브로’에 투자를 많이해 위험도가 아주 높다”면서 “일단 내년까지는 살아남는게 급선무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부문이 최소한 20∼30%씩 견실한 성장을 유지해야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17만명인 ‘리브로’ 회원을 50만명으로 늘리는게 일차 목표.

전 사장은 “오프라인 서점은 이를 위한 물류창고와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 창구의 개념일 뿐”이라고 했다. “도서 유통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이 분야에 진출할 생각도, 여력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예상외로 소박한 답변이다. 그렇다면 ‘리브로’를 성공시킨 뒤에는?

“아무 것도 생각해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은 길면 5년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후에는 지금까지 신경쓰지 못한 가족과 느리게, 편하게, 즐기면서 살아야겠죠.”

전 사장은 “청와대에 살면서 만난 권력가들의 말년이 얼마나 초라한지 실감했다”면서 “젊어서 배워둬야 늙어서 즐길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일주일에 이틀씩 중국어 개인교습을 받고 중국을 자주 들락거리는 것도 사업보다는 재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진짜 꿈’은 홍대익 앞에 있는 서점 겸 복합문화공간인 아티누스의 점장을 하면서 젊은 사람들과 많이 만나는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그가 사업을 왕성하게 벌일 수 있었던 자금이 전 전대통령의 비자금이 아니겠냐는 오랜 의혹에 대해 직접 물어봤다.

“일찌기 친구들과 시작한 인터넷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안 믿으시려하더군요. 12년간 같은 해명을 반복하다보니 이제는 짜증이 다 날 정도입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