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작 < 네이티브 스피커 >(1995)에 이은 이씨의 두 번째 소설인 < 제스처 라이프 >(1999)는 지난 8월 < 과거속의 희미한 불빛(Les sombres feux du pass) >(올리비에출판사)이란 제목으로 불역되자마자 현지 매스컴의 반응이 뜨거운 것이죠.
두 달만에 프랑스 최대일간지인 '르 몽드'를 비롯해, 일급 주간지 '렉스 프레스'와 '누벨 옵세르바투어' 등 10여개 주요 언론 매체가 이씨 소설을 크게 호평했습니다. 한국 출신 작가로 뿐 만 아니라 미국에서 영어로 창작하는 작가로서도 프랑스에서 이만한 대우를 받기는 특별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중앙M&B를 통해 번역 출간된 <제스처 라이프>는 미국 중산층 이민자인 주인공 프랭클린 하타를 통해 이방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소설입니다. 일제시대 조선에서 태어난 뒤 일본에 입양된 하타는 태평양전쟁중 일본군 위생병으로 미얀마에 파견됐고, 거기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한국인 정신대 여성 ‘끝애’를 돕지 못하고 죽임에 이르게 만든 죄책감에 평생 시달립니다. 그는 한국 혼혈아를 입양해 속죄하려 들지만 아이와 갈등에 휩싸이면서, 자신이 평생 키워온 것은 “결국 매너와 제스처 뿐인 인생”이었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입니다.
국내에서는 별로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일부에서는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만)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에는 미국에서 내노라하는 작가들에게도 기회가 잘 오지 않는 ‘뉴욕타임스’ 주말판 ‘북리뷰’표지작으로 선정될 만큼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미국인도 혀를 내두르는 빼어난 문장 구사력, 서정적이며 신랄한 묘사, 독특한 이야기 구조와 문체, 미국 사회에 웅크린 이국인(異國人)의 고뇌가 신선했다는 평가를 받았죠. 미국의 대표적인 종합문예지인 ‘뉴요커’는 1999년 ‘21세기를 이끌 젊은 작가 20명’을 선정하면서 이씨를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분위기와는 다소 다르게, 프랑스 언론은 ‘국외자’의 정체성을 다룬 소위 ‘이민문학’이란 관점에서 < 제스쳐 라이프 >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르 몽드'는 8월31일자에서 "이창래는 의무와 예의를 지키며 살아야하는 미국사회의 이방인의 강박관념을 섬세하면서도 냉철하게 묘사한다"고 보도한 것이 한 예가 될 듯합니다.
이는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2000) 나이폴(2001)이나 올해 영국의 대표적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은 피터 캐리 등 최근 '이민 문학'에 대한 세계 문단의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씨가 문학의 본산이라할 유럽에서도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그가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쳐보게 만듭니다.
현재 파리에 거주하는 임준서 교수(전 파리7대학 동양학부)는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이창래의 작품은 지난 8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후, 르몽드(8월 31일자 문학특집 섹션, 5면 5단 기사)를 필두로, 프랑스 주요 일간지 및 주간지에 작가와 작품에 대해 상세히 소개되었습니다.
이창래의 작품은 20세기를 거쳐 21세기 너머로 점철되는 전쟁과 재난으로 인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는 수많은 민족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이민문학’의 전형으로 봅니다. 여기에는 인류사에 낯익은 질문들 -정체성 및 소속감, 근원으로의 회귀, 동화와 통합, 자기부인과 배반, 죄의식 등-이 새로운 각도에서 제기됩니다. 이런 문제들이 개인적 체험을 통해 인류의 보편성으로 승화될 때, 한 개인이나 민족의 고민에 그치지 않고 세계문학 안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이죠. 최근 이창래씨 소설 등 ‘이민문학’ 작품들이 크게 주목을 받는 것도 ‘이민문학’만이 갖는 특수성과 보편성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와 금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중국계 프랑스 작가 가오싱젠과 서인도제도 출신 영국 작가 나이폴-이 모두 ‘이민문학’ 작가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겠지요. “
프랑스 평단은 소설의 내용 못지 않게 아름다운 문체에 대해서 입을 모아 격찬하는 분위기입니다. 이 소설을 "고통속에서 잘 다듬어진 다이아몬드와 같은 작품"이라고 평한 ‘렉스프레스’지는 "완벽한 각본, 운율처럼 들려오는 매혹적인 산문체가 폐부를 찌른다"고 호평한 것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한가지 독특한 것은, 여러 매체가 이씨 작품의 아름다운 문체를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와 비교해 높은 평가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일본인의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1970년 할복 자살한 극우 소설가로만 알려진 유키오는 사실 일본 문학과 문화가 100년전 부터 꾸준히 소개된 프랑스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산문을 구사하는 동양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 작용한 듯합니다. 이는 이창래식 문체가 프랑스 식자층에서도 호소력이 있다는 증좌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창래의 작품에 대한 주요 프랑스 언론의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위대한 소설’, ‘걸작’이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과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Christian Sauvage, Le Journal du Dimanche)
“이 소설은 생동감 있는 감동과 고통 속에서 잘 다듬어진 보석같은 작품이다. 완벽한 각본, 운율처럼 들려오는, 매혹적인 산문체가 폐부를 찌른다, 마치 미시마의 산문과 비견된다. 이창래는, 불문단에 올 가을 혜성처럼 다가온 외국인 작가이다.”(Andre Clavel, L'Express)
“놀라울 정도로 잘 짜여진 이야기, 세련된 구성으로 언제나 기억의 굴곡을 좇아가려고 애쓰면서, 시간을 뛰어넘지만 현재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Michele Gazier, Telerama)
“호기심과 장엄함이 느껴지는 소설,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속삭이듯 전하는 소설.”(Frederic Vitoux, Le Nouvel Observateur)
“이창래는 섬세하면서도 냉철하게 의무와 예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한 인간의 강박관념을 묘사한다.”(Martine Silber, Le Monde des livres)
“지난날의 망자들이 차를 마시러 온 듯한 소설.”(Andre Rollin, Canard enchain)
이창래 소설에 대한 관심은 부수적으로 일본에 비해 한국 근대사에 무지한 프랑스 독자들의 계몽(?)에도 적지 않은 힘이 될 듯합니다.
임 교수는 “< 제스처 라이프 >가 간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종군위안부 문제가 이에 무지한 프랑스 독자에게 한일 과거사 문제의 비극성을 환기시켜주었다는 점도 문학외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라고 말하더군요.
문학의 위기와 빈곤을 우려하는 우리에게는 이창래씨의 선전이 반가운 노릇이지만, 이씨 본인은 여러 인터뷰에서 누차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깊이 체감하지 못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면 백남준과 마찬가지로, 이런 한국이란 지역성을 탈피한 유목민적 정신이 그를 뛰어난 작가로 단련시킨 원동력이 됐을 테지요.
이창래씨는 사립명문고인 필립스 엑지터 아카데미와 예일대학을 졸업하면서 미국 이민자 사회에서 대표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한 때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일을 했던 그는 30세에 접어들면서 작가에 입문, 미국 문청에게는 꿈과 같은 펭귄/퍼트넘 계열사인 리버헤드북스에서 첫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를 출간, 미 문단의 주요 신인작가상을 휩쓸었습니다. 그 뒤 뉴욕시립대 헌터칼리지 영문과 문예창작 석사과정 디렉터로 부임했으며, ‘뉴욕타임즈’의 ‘북리뷰’ 서평위원으로도 참여했습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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