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유인촌/후원 손길이 공연예술 꽃 피운다

  • 입력 2001년 10월 24일 18시 39분


TV 뉴스나 신문 사회면을 펼칠 때마다 늘 우리의 심장이 놀랄 일로 가득하다. 아니 너무 놀라서 이젠 무디어졌는지도 모른다. 정보통신이 그 나라의 국력을 가늠하기라도 하듯 눈부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연극이 필요나 한 것일까.

▼제작비 건지기도 힘들어▼

포스터 붙이기부터 시작한 배우 생활이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연극은 몇백년 전 과거의 이야기든, 앞으로 닥쳐올 미래의 이야기든 극장 안에서 늘 현재로 존재하는 생생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어두운 극장 안에 관객이 들어서고 조명에 불이 들어오면 극장의 작은 공간은 환상의 세계로 변모하고, 무대 위의 배우와 객석의 관객은 땀과 소리와 몸짓에 의해 서로를 확인하면서 교감한다.

이렇듯 연극은 어느 시대, 어떤 세상이 되더라도 인간의 원초적인 에너지에 의해 계속 발전될 예술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현실의 혹독한 어려움에 좀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안타깝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것은 공연예술은 자생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이다. 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하루에 한 번 공연으로 그 작품의 제작비를 건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대중적이라는 연극은 장기 공연도 가능하나 무용, 음악, 오페라 등은 나흘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관객수가 제한되어 있다. 또 하나, 이익이 남으면 배우들에게 얼마간의 개런티라도 쥐어 주겠지만 대부분 교통비도 못 건지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2년 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유시어터라는 소극장을 짓기 전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약 20여 개의 크고 작은 극장을 찾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신기하게도 브로드웨이의 상업적 뮤지컬극장이든, 오프나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작은 실험적 극장이든 공연 장르와는 상관없이 매일 밤 관객들이 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힘겹고 배고픈 연극을 하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 고전의 현대적 해석, 또는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공연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 그 뒤에는 정부의 지원 또는 기업의 후원이 따르고 있었다. 물론 아무에게나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엄격한 심사와 절차를 걸쳐 선정되면 아무 조건 없이 공정하게 지원하고 있었다.

또 매년 여름휴가 때면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야외공연장에서는 유명 연출가와 배우, 스태프들이 참여하는 작품이 뉴욕 시민들에게 무료로 공연된다.

뉴욕의 기업들이 모두 후원해서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시민들에게 여름 한 달 동안 훌륭한 작품을 볼 기회를 제공해 기업의 이윤을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우리도 매년 정부에서 공연계 지원기금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된다. 허나 그 기금이 예술적 공연의 재창조를 위해 과연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는가는 잘 따져봐야 할 일이다. 좋은 제도가 있으나 그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사람’에 달려 있다. 어느 것이 창조적인 공연인가, 실험적인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가, 예술적 완성도는 어느 정도인가를 판단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너무 여기저기 조금씩 쪼개어 주다 보니 제대로 효과를 못 내고 있다. 또한 경기위축으로 기업의 문화 지원은 안면이 있거나 누군가 부탁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뿐이다. 이 경우에도 정말 좋은 기획이나 시대를 선도해 갈 수 있는 완성도가 높은 공연은 드물다.

▼완성도 높은 공연 지원을▼

21세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예술 활동은 사람들의 감성이나 정서에 영향을 준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돈을 투자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 멀리 내다보고 지원 기금의 폭도 넓혀야 하고 또 사후 관리도 철저히 해서 믿을 수 있는 단체나 개인에게 공정한 절차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 기업에 대폭적인 문화 세제 혜택을 주어 이윤이 다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런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서로의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늘 불신과 반목이 생길 것이다. 믿음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바로 예술이 할 일이다.

유인촌(유시어터 대표·배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