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나의 아빠 닥터 푸르니에'

  • 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08분


▼'나의 아빠 닥터 푸르니에' 쟝 루이 푸르니에 지음/이형진 그림/김남주 옮김/160쪽 7900원/웅진닷컴▼

가난한 환자에게는 진료비 한 푼 받지 않고도 영수증을 끊어주면서 보험료 환급을 받게끔 배려해주는 아버지. 그러나 술만 마시면 엄마를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가끔씩 의료용 메스로 손목을 그으며 자살소동을 벌이는 아버지.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시키는 ‘닥터 푸르니에’의 첫인상, “이거, ‘엽기아빠’ 아냐?”

엽기 아빠의 엽기 행각은 이 것 말고도 무궁무진하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식탁에서 디저트를 먹다가도 복숭아를 가족들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지고 “돈이 필요하다”는 엄마에게 “나는 돈을 경멸한다”며 돈뭉치를 가스불에 집어던진다. 그러나 환자들 앞에서 결코 우울한 표정을 짓는 법이 없고 때로는 죽어가는 환자를 웃기기까지 한다. 중국의 전통 가면을 쓰고 초인종을 누르는 ‘깜짝쇼’를 하는가 하면 에펠탑 모양의 황금빛 병에 담긴 향수를 엄마에게 사다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믹 영화의 필름을 사다가 직접 영사기를 돌려준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아들은 묻는다. “알이 작은 금속테 안경을 쓰고 책을 읽을 때면 학자처럼 보이던 아빠. 어째써 지금의 아빠는 늙고, 서글프고, 우리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엄마에게 고약하게 대하고, 때때로 우리를 겁에 질리게 만드는 것일까?”

프랑스에서 방송작가 겸 감독, 소설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어렸을 적 아버지에 대한 어두운 기억을 경쾌하게 반전시켜 자전적 성장 에세이로 승화시켰다.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돼 바라본 아버지의 모순된 삶을 저자는 씁쓸하게나마 긍정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한 아버지는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진 미치광이의 시대를 겪으면서 스스로 무엇엔가 중독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다. 아버지는 43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뜬다.

저자는 짤막한 맺음말을 통해 삶의 진실을 밝힌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사는 게 간단치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좋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다고 해서 나약한 이들을 너무 원망해선 안된다는 것을.”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누구든 감동깊게 읽을 수 있는 책.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