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한다]'이렇게 좋은 자수'등 펴낸 허동화 자수박물관장

  • 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16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자수(刺繡) 문화가 있지만 한국 자수처럼 실용과 예술이 겸비된 자수는 보기 힘듭니다.”

최근 ‘이렇게 좋은 자수’ ‘이렇게 고운 색’ 등 2권의 책을 동시에 내놓은 한국자수박물관장 허동화씨(75). 25년여 동안 자수 보자기 등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규방 물건들을 억척스레 모아온 고집쟁이다.

‘이렇게…’는 4반세기 동안 계속된 그의 수집 작업의 결정판. 고려시대 자수병풍을 비롯해 보물 2점, 중요민속자료 3점 등 명품 200여점을 선별 수록했다.

“물론 두 책 모두 대중적으로 팔릴 책은 아닙니다. 가격도 40만원이고…. 하지만 한국 자수를 총정리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해외에도 배포할 생각으로 작품 소개도 영어로 번역했어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60년대 중반 우연히 외국인들이 자수를 대량 반출하는 걸 보고 ‘우리 것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직장을 때려치운 뒤 자수 모으기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모은 자수 보자기 등은 모두 3000여점. 그는 76년 자수박물관을 세우고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박물관에서 40여차례 전시회도 가졌다. 그동안 자수박물관을 다녀간 관람객도 600만명에 이른다. 물론 그동안 돈이 숱하게 들었다. 대략 계산해도 1년에 평균 1억원 정도가 필요했다는 것.

“치과의사인 아내가 밑천을 대주지 않았다면 도중에 포기했을 겁니다. 처음엔 반대하던 아내도 자수에 반해 나중에 저와 같이 작품을 모았어요.”

책에 등장하는 자수 보자기 옷 병풍 등은 정말 형형색색이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뛰어난 색채를 갖고 있었다.

“흔히 우리 민족은 ‘백의 민족’이라는 고정관념에 젖어 색 문화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자수 등을 보면 우리 만큼 다양하게 색을 사용한 민족도 없는 것 같아요.”

한국 자수는 중국 자수와 비교하면 차이가 확 드러난다. 가는 실을 이용해 ‘그림과 똑같은 감상용 자수’를 추구한 중국 자수에 비해 한국 자수는 굵은 실을 이용해 실용성을 가미하면서 다양한 색채와 디자인으로 미감까지 살렸다는 것. 장 프랑스와 자리그 프랑스 기메 박물관장은 이 책 앞머리에 실린 추천사에서 “선명한 색상이 조화롭고 우아하게 표현된 한국 자수예술은 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극찬하고 있다.

그러나 자수는 고고미술계에서 아직도 찬밥 신세. 그는 자수에 대한 연구가 보다 체계적이고 학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뜻밖에도 ‘100년 계획’을 얘기했다.

“내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전통섬유예술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 100년을 내다본 계획을 짜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지금까지 낸 책을 쌓아놓으면 제 무릎까지 오는데 앞으로 제 키(165㎝)까지 책을 내고 싶어요.”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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