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클 경 獻-바칠 헌 堂-집 당 勤-부지런할 근 弘-넓을 홍 諱-꺼릴 휘
입으로는 ‘조상의 빛난 얼’을 말하면서 그 ‘얼’을 담은 漢字를 모른다면 과연 오늘에 되살릴 수 있을까? 景福宮 3字를 모르고서 그 속에 담긴 숭고한 역사정신을 알 수 있을까? 景福宮이라는 이름은 조선 太祖(태조) 4년(1395) 10월 7일 御命(어명)을 받은 鄭道傳(정도전)에 의해 獻上(헌상)되었다.
景福은 ‘큰 복’, 景福宮이라면 큰 福을 내리는 ‘宮闕’이라는 뜻이다. 詩經(시경)에 旣醉(기취·잔뜩 술에 취함)라는 시가 있다. 제사가 끝난 뒤 잔치에서 천자의 福을 비는 노래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旣醉以酒(기취이주)-임금의 술에 한껏 취했으며, 旣飽以德(기포이덕)-임금의 德에 배가 이미 부르다네.
君子萬年(군자만년)-임금께서는 천년만년 사시고, 介爾景福(개이경복)-큰 복(景福)을 누리사와 만수무강하옵소서.
곧 景福宮에는 임금의 만수무강과 큰 복을 기원하는 백성들의 소박한 염원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본 궁궐의 축조도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明堂(명당) 중의 明堂을 골라 자리 잡았다. 李成桂(이성계)가 즉위한지 3년(1394년)에 시작한 이 宮은 우선 主山인 北岳山(북악산) 아래에 위치하여 앞으로는 광활한 시가지가 전개되며 그 옆으로 案山(안산)인 南山(남산)이 있고 청계천을 內水(내수)로, 한강을 外水(외수)로 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左祖右社(좌조우사)의 원칙에 입각하여 宮의 왼쪽에는 宗廟(종묘), 오른쪽에는 社稷壇(사직단)이 있다. 이 모든 것이 李成桂가 천년사직을 염두에 두고 원대한 계획 하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후에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270년이 지난 1865년 大院君(대원군) 때에 와서 重建(중건)되었던 것이 日帝(일제)에 의해 다시 한 번 일부가 헐리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勤政殿(근정전) 앞에 總督府(총독부) 청사를 지어 식민지 수탈의 총 本山으로 삼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그 자리는 본디 景福宮의 궁내 正門인 興禮門(흥례문)이 있던 곳이다.
96년에 시작한 興禮門 복원공사가 落成(낙성)을 보았다. 85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것이다. 본디 弘禮門(홍례문)이라고 했는데 重建 당시 淸나라 乾隆帝(건륭제)의 이름자인‘弘曆(홍력)’을 避諱(피휘)한 결과다. 景福宮의 복원과 함께 민족의 自尊(자존)도 되찾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에는 ‘光化門’에 대해 알아본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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