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월군 남면 창원2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병호씨(50)는 조선 중기 때의 것으로 보이는 나한상(羅漢像) 230여구가 발굴된 밭 332평을 국가에 기증하겠는 뜻을 최근 밝혔다. 이 땅에서는 나한상 이외에도 나한상을 봉안했던 나한전 건물터도 발견됐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사유지를 국가에 기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
김씨의 땅은 지난 5월 발굴 작업이 시작된 이후 나한상과 나한전 터가 동시에 출토된 중요 유적으로 밝혀지면서 학계의 관심을 끌어 왔다. 불교에서 전해오는 나한은 일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은 최고 성자를 뜻한다. 이번에 출토된 나한상은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30cm, 어깨 폭 20cm 안팎의 소형 좌상이 대부분이다.
김씨는 “지난주 발굴 현장 지도위원회가 끝난 뒤 전문가들 사이에서 발굴장소를 보존해야 한다는 얘기가 오가길래, 내가 먼저 기증하겠다고 했다. 혹시 나중에 마음이 변할지 몰라 그 자리에서 약속했다”고 밝혔다.
불교신자인 김씨는 이곳에 원래 작은 사찰을 지으려고 준비 공사를 하다 지난 5월 나한상을 발견해 문화재청에 신고해 발굴작업이 시작됐다. 김씨는 “사찰을 짓지 못하게 됐지만 불교유적인 이곳을 보존할 수 있다면 불교신자로서 사찰을 짓는 것 못지 않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 땅은 시가 700여만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액수에 관계없이 문화재 보존을 위해 사유지를 국가에 기증한 것은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유지에서 문화재가 출토되면 재산권 침해를 우려해 출토 자체를 숨기려는게 요즘 세태인데 김씨의 기증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조만간 이 땅의 국가기증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국가 기증은 김씨가 국가 무상귀속 증명서를 첨부해 등기 이전만 하면 된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이 땅을 국가 소유로 할 지, 영월군 소유로 할 지를 놓고 현재 검토 중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관리 주체와 소유 주체가 일치하는 것이 문화재 보존에 좋다는 판단에 따라 관리 주체인 영월군으로 소유권을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씨는 사유지에서 나온 유물을 국가에 신고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비를 지급받게 된다. 이곳에서는 최근 1차 수습 발굴이 끝났고 내년도에 추가 발굴이 실시된다. 그동안 나한상이 무더기로 발굴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곳 발굴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나한에 관한 신앙이 시작된 것은 통일신라 때. 고려 들어서면서 16나한상 오백나한상 등을 조성해 봉안했으나 현재까지 전하는 나한상은 극히 드물다. 1994년 전남 나주시 다도면 불회사 인근에서 나한상 100여구가 부서진 채로 발굴된 적이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