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동일대 범죄 표적]일산 '베벌리힐스' 강도 극성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24분


‘일산의 베벌리힐스’로 불리는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장항동 일대가 최근 잇따라 강력 범죄의 타깃이 되고 있어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가스회사나 케이블TV회사, 시청 직원 등을 사칭해 미리 집으로 전화를 해 문을 열게 한 후 침입해 돈이나 물건을 털어 가는 ‘대낮강도’가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경찰의 치안력을 믿지 못하게 된 주민들은 3일 자체적으로 ‘우리 마을 지킴이’를 결성해 범죄예방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또 이웃간에 긴급 비상벨을 설치하는 등 ‘네이버 캅’을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492세대 1690여명이 거주하는 일산신도시 27블록에는 동화속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유럽풍 단독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각종 방송드라마와 신혼부부의 야외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 하지만 ‘멋진 분위기〓부유층’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잇따라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27블록 집앞에서 놀던 5세 어린이를 유괴했다 경찰에 붙잡힌 원모씨(34·경기 성남시)는 “부자동네로 소문나 아무나 유괴해도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 봄 집앞에서 납치강도를 당한 한 주부는 “아직도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수사는 오리무중”이라며 “늘 두려움에 시달리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올 봄 납치강도 이후 예방 활동이 강화되었으면 유괴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3일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소집한 긴급 대책회의에 모인 30여 가구 주민 중 직접 피해를 보았거나 볼 뻔했던 주민이 25명을 넘었다.

주민들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의 범죄피해 경험 등을 쏟아내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김모씨는 차량 뒤에 실어 놓은 골프채를 세 번이나 털렸고 자신의 자동차 트렁크가 열린채 발견되었다는 주민도 부지기수였다.

누군가 작은 돌을 창문에 던져 인기척을 확인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개가 짖어 밖을 내다보면 낯선 사람이 배회하는 장면이 종종 목격되어 주민들의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주민 손광운 변호사는“끊임없는 범죄 시도와 잇따른 강력범죄 발생으로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며 “경찰의 소극적인 대처에 한계를 느껴 주민들이 나서 직접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산 사저(私邸)가 있던 마을이라 대통령 취임을 전후한 98년초만해도 방범초소가 설치되는 등 ‘삼엄한’경비가 계속돼 범죄가 거의 없었지만 이후 사저가 매각되면서 초소가 사라지고 마을 입구의 파출소 예정 부지가 식당 주차장으로 바뀌는 등 경찰의 ‘관심’이 급격히 떨어졌다. 사설경비업체를 이용하는 가구가 전체의 약 60%에 이른다. 주민들은 작가, 예술인, 언론인, 교수 등 전문직종 종사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을 뿐 ‘큰 재산가’가 없는데도 범죄 표적이 되고 있어 더욱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마을 지킴이’의 임시 위원장을 맡은 박관수씨(40)는 “마을을 상대로 강력 범죄가 잇따르지만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아 스스로 예방 활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이동영기자>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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