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출판계 입도선매 관행 사라진다

  • 입력 2001년 11월 6일 18시 51분


출판사들이 유명 작가들에게 책을 내기 전 조건없이 준 계약금도 책이 예상보다 팔리지 않았다면 돌려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에 대해 출판사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출판계에서는 인기작가 등의 원고를 확보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약조건도 명시하지 않은채 계약금을 주는 주먹구구식 입도선매(立稻先賣) 경쟁이 오랜 관행이었으나 이번 판결로 이런 관행이 개설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작가들이 계약금만 받고 원고를 제때 주지 않는다든지 예상 외의 질 낮은 원고로 인해 책이 제대로 팔리지 않아도 속앓이만하는 실정이었다.

한 출판사 사장은 “인기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반해 출판사는 1700여개사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출판사와 인기작가와의 관계는 작가쪽에 힘이 쏠릴 수 밖에 없다”며 “90년대이후 출판사들이 대거 늘면서 선인세 차원의 계약금이 수천만원에서 억대까지 늘어났다”고 전했다. 일부 작가들은 계약금을 받고도 작품을 내지 않는다든지 애초 기획의도와는 전혀 다른 작품을 내놓아 출판인들을 당혹케 만들기도 한다는 것. 다른 출판사 사장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작품’을 계약하기보다 ‘사람’을 계약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나중에 작품이 흥행에 성공 하지 못했을 경우에도 ‘지속 가능한 관계’가 깨질까 봐 가급적 시비는 벌이지 않는다”면서 “따라서 이번 판결이 출판사 입장에서는 어떻든 안전장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오랜 출판 관행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중론.

한 출판사 사장은 “대다수 출판사와 작가들은 오랜 인연을 통한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고 계약금 관행도 어느 일방을 탓할 수 없는 거래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관행이 획기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유명작가는 “선인세는 작가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작가에게 먼저 제시하는 투자”라며 “계약금만 떼먹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작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이런 작가들은 출판계에서 금방 소문이 나 곧 도태된다”고 말했다.

즉 신예 작가들을 발굴하기보다 기존 작가를 통해 안전하게 가겠다는 업계의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작가들에게 주는 거액의 계약금 관행은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민음사 박상순 주간은 “최근 경제불황으로 출판사들도 어려움을 겪고있어 예전의 고액계약금 관행도 차츰 바뀌고 있다”며 “적정 선인세는 초판 인세 정도인 최저 200만원 최고 500만원선이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좀더 투명한 계약관행이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허문명·윤정훈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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