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중견의사]고위험 임신과 불임/윤보현-김석현 교수

  • 입력 2001년 11월 11일 18시 34분


▼서울대병원 윤보현 교수▼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윤보현 교수(46)는 “판소리의 고수(鼓手)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그는 다른 의사나 환자가 목소리를 높일 때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렇군요”라고 말하는 등 상대방의 말이 끊기지 않도록 돕는다. 판소리에서 고수가 추임새로 소리꾼의 흥을 돋구는 것처럼.

윤 교수의 아내 이병혜씨는 “남편은 가족과 대화할 때도 주로 ‘그래서’ ‘그리고’ 등 접속사만 말한다”면서 “진료실에서 환자의 여러 사연을 귀담아 듣는 것이 몸에 배인 결과”라고 말했다. 이씨는 80년대 초 KBS 저녁 9시 뉴스 앵커였고 현재 KBS와 YTN 등에서 대담 프로그램 등을 진행 중인 유명 MC다.

윤 교수는 남의 주장이 아무리 황당하게 들려도 경청한다. 이 태도는 윤 교수의 연구 성과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 미국 예일대의 로베르토 로메로 박사가 조산의 주원인이 자궁내 감염이라는 당시로서는 ‘황당한 가설’을 발표했을 때에도 윤 교수는 웃고 넘기기보다는 논문을 읽고 또 읽었다.

이론이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윤 교수는 곧바로 로메로 박사에게 ‘한 수 배우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두 사람은 공동 연구를 통해 93년부터 권위있는 학술지에 이 가설을 입증하는 논문들을 잇따라 쏟아냈다.

윤 교수는 특히 뇌성마비도 태아 때 감염이 주원인이라는 사실을 세계 처음으로 규명해 ‘산부인과 교과서’를 바꾸도록 만들었다. 윤 교수가 99년 미국 학회에서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 참석자들은 기립 박수로 응답했다.

윤 교수는 90년 빈혈로 숨지기 직전인 태아를 탯줄로 통해 수혈하는 방법으로 살리는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공하는 등 치료 분야에서도 발군의 실력가로 인정받고 있다.

-왜 ‘건강한 임신 출산’이 중요한가.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산모 사망은 급격히 감소했지만 태아에게 잘못되는 경우는 여전히 문제다. 엄마 뱃 속에 있는 때는 일생의 건강을 좌우하는 시기다. 외견상 정상으로 태어나도 산모가 영양 부족이었다면 아이는 나중에 커서 고혈압 뇌중풍 심장병 등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엄마가 당뇨병이면 아이가 나중에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임신 26∼35주에 출산하는 조산은 큰 문제를 일으킨다. 매년 신생아의 8∼10%가 조산으로 태어나며 이 중 5∼10%가 숨진다. 살더라도 뇌성마비와 만성폐질환, 뇌출혈, 발달장애 등으로 평생 어려움을 겪기 일쑤다.”

-조산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은….

“현재까지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 최근 자궁이 세균에 감염되면 염증 반응이 일어나면서 태아에게 손상을 주는 한편 자궁 근육 운동을 유발해 조산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론적으로는 적절한 시기에 항생제를 투여하면 조산과 태아 손상을 예방할 수 있다. 항생제는 기형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형은 임신 초기에 주로 생기므로 이후에 생기는 자궁 감염은 항생제로 치료해야 한다.”

-기형아 예방을 위해서는 어떤 점에 신경써야 하나?

“가임 여성은 풍진 예방접종을 반드시 해야 한다. 임신부가 풍진에 걸리면 절반 이상이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 그런데 풍진에 걸렸는지 아는 검사법은 99%의 정확도를 갖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매년 신생아가 50만명 정도 되므로 이 중 1%는 풍진이 아닌데도 풍진에 걸린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임신부가 기형아 출산보다는 유산을 택하고 있다. 멀쩡한 아이가 ‘생명의 꽃’도 피우지 못하고 숨지고 있다.”

-제왕절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가능하면 자연분만을 택하는 것이 좋다. 임산부가 단순히 산고를 피하기 위해서 수술을 받으려고 한다면 대안으로 무통분만을 권하고 싶다. 한때 첫 분만 때 제왕절개를 했어도 다음번에 자연분만을 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졌지만 그렇지는 않다. 제왕절개를 받은 사람은 다음번 출산 때 꿰맨 자리가 터질 확률이 0.5%나 된다. 이 경우 산모나 신생아 모두 위험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80년대까지 ‘제왕절개 경험이 있는 산모도 다음에는 자연분만을 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던 의사들이 지금은 ‘제왕절개를 한 산모는 계속 재왕절개를 하는 것이 좋다’고 밝히고 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서울대병원 김석현 교수▼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 생활 12년만에 아이를 낳았어요. 얼마나 감격했는지 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김석현 교수(44)는 최근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사례 하나가 더 늘었다고 싱글벙글이다. 그의 환자는 대부분 병원을 전전하다가 지푸라기도 잡을 듯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오는 불임 부부들이다.

10여년 동안 임신 성공률 80%. 그는 불임 부부들에게 ‘사랑의 메신저’로 통한다. 처음에는 울먹이며 매달리던 불임 여성도 1, 2년 후에는 만삭이 된 몸으로 나타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간다. 요즘은 “하나로는 부족해요. 둘째를 낳게 해 주세요”라며 나타나는 부부들도 많다.

주변에서는 그를 두고 “시험관 아기 시술로 불리는 체외수정시술(IVF) 등 불임 치료의 최정상”이라고 평가한다. 지칠 줄 모르는 연구 활동으로 10여년간 250편이 넘는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96년에는 체외수정시술에서 자궁에 배아를 이식하기 직전에 보조 시술로 임신률을 높이는 방법을 처음으로 밝혀내 대한산부인과학회 최우수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지독한 음치(音癡)’라고 소개했다. 가끔 있는 회식 자리가 늘 부담스럽고 마지못해 노래를 부를 때면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이지만 부인 이양준씨(41)는 중앙대 음대 강사이고, 처조카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이다.

-아이를 갖지 못해 마음 고생하는 부부가 많다는데.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져도 1년 안에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불임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불임 부부의 비율이 15%, 국내는 10%에 이른다. 10쌍 중 1쌍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셈이다. 여성이 35세가 넘으면 생물학적 생식 능력이 대폭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위험 환자들이 몰리는 서울대병원에서도 35세 이전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면 70∼80%는 임신이 가능하다.”

-왜 아이를 갖지 못하는가.

“여성의 난관 난소 자궁 등에 문제가 있거나 과거 수술 후유증이 불임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최근에는 남성의 정액이 ‘부실’해지면서 불임이 되는 경우가 40%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 2, 3개 원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술을 거쳐야 임신이 가능하다. 이밖에도 결혼 연령이 점차 늦춰지고 있고 현대인이 시달리는 각종 스트레스와 환경 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불임 부부의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평소 확실한 피임을 해서 임신 중절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임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갖을 수 있는가.

“원인에 따라 시술법이 무척 다양하다. 난관이 막혔으면 체외수정시술을 한다. 임신 성공률은 35%이고 횟수를 더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정상 부부가 1회 성교할 때 25%, 6개월간 60%라는 점에 비춰보면 대단히 높은 성공률이다. 이밖에 배란유도제를 사용하거나, 나팔관시술 난자세포질내정자주입술(ICSI) 등이 있다.”

-한국의 불임 치료술은 어느 수준인가.

“세계 정상급이다. 한국의 불임 치료술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더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국가경쟁력이 높다. 최근 미국불임학회에서 발표된 논문의 10%는 한국 의사들이 작성한 것이다. 요즘 외국인들과 교포 부부들이 한국으로 불임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교수는 최근 인간 배아의 줄기세포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이는 선진국에서 국가사업으로 앞다투어 진행하는 연구 분야로 국내에서도 하루 빨리 생명윤리법 등 관련법이 정비돼 연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임 부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병원을 전전하는 ‘닥터 쇼핑’이 지나치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이해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만큼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선택한 뒤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또 검증이 안된 민간요법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무리한 쑥찜질로 아랫 배에 화상을 입은 채 오는 환자가 있을 정도다. 불임 부부에게는 정서적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부가 서로를 격려하고 믿음을 가질수록 치료 효과도 좋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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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뽑았나▼

서울대 병원 교수들이 메디컬 프런티어의 고위험 임신, 남녀 불임 3개 분야를 평정했다.

동아일보사가 전국 16개 의대 산부인과 및 비뇨기과 교수 65명에게 △가족 중고위험 임신 및 불임 환자가 있으면 맡기고 싶고 △치료 및 연구 실적이 뛰어난 △50세 이하의 의사 5명씩을 추천받아 집계한 결과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의 윤보현 교수와 김석현 교수, 비뇨기과의 백재승 교수 등 3명이 고위험 임신, 여성 불임, 남성 불임 분야 에서 최고 득표했다.

이들 중 백 교수는 지난해 동아일보사에서 연재한 ‘베스트 닥터의 건강학’에서 남성 성기능 장애 분야와 남성 불임 분야 2관왕을 차지한데 이어 이번 메디컬 프런티어에서도 이 두 분야의 1위에 올랐다. 백 교수의 인터뷰 기사는 8월 27일자 ‘남성 성기능 장애’ 분야 때 게재했으므로 이번에는 싣지 않는다.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의 박용원 교수는 고위험 임신 분야에서 윤 교수와 비슷한 추천을 받았지만 51세여서 제외했다. 또 불임 분야에서 포천중문의대 차광렬 학원장도 많은 추천을 받았지만 그는 현재 미국 콜롬비아대 의대 교수로 활동 중이어서 제외했다. 추천받은 의사를 소속병원 별로 집계한 결과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중앙병원, 한양대병원, 삼성제일병원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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