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같은 별칭을 갖게 된 충남교육청 이병웅 장학사(56)와 9일 오후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아내인 양승숙 육군본부 간호병과장(51)의 장군 승진이 결정된 다음 날이었다.
“축하해 주셔서 고맙기는 한데 직접 찾아오시는 것은 거절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10일 오전, ‘정중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전행 고속버스에 올랐고 2시간여만에 ‘축 국군 창설 이래 첫 여성장군 탄생, 충남 출신 양승숙 장군’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충남교육청 정문에 들어섰다.
4층 초등교육과.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축전이며 난초 화분, 10분마다 울려대는 축하 전화가 최근 일어난 ‘경사’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정작 이 장학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느긋한 표정이다.
“어떤 외조를 했는지 묻는 사람이 많은데 집안일은 별로 도와주지 못했어요. 아내가 하는 일을 믿고 지지해 주었을 뿐이지….”
결혼 생활의 40%는 떨어져 지냈다는 이 부부의 금실이 여전한 것도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여느 부부들처럼 매일 부대끼지 않다 보니 싸울 일도 거의 없었다는 솔직한 대답도 들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면서 싸우면 그게 부부냐”는….
충남 청양에서 자란 이 장학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주교대에 진학한 이유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3년간 교직생활을 했던 장인이 ‘선생’이라는 직업을 좋아했던 터라 특별히 아꼈던 셋째딸을 선뜻 ‘내 준’ 것 같기도 하네요.”
낯간지럽게 ‘아내가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멋쩍은 듯 웃는 그의 말투에서 부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전형적인 ‘훈장’스타일. 한국군 최초의‘여장군’과의사이에 딸만 둘을 뒀다.
“우리 형편이면 둘이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딸들한테 최선을 다하는 아빠가 되기 위해서 불임수술까지 했어요. 딸들이 다 시집가면 부인이랑 우리 아들(강아지) 우람이와 살면 되죠, 뭐.”
하지만 ‘여성이 사회적으로 더 성공할 만한 능력이 있으면 남편이 가사를 전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부가 서로 돕는 것은 좋지만 남성이 가사를 전담하는 것은 좀…” 이라며 말꼬리를 흐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한국 가장’이다.
이날 오후 1시 교육청 근처 고깃집에서 초등교육과 식구 20여명이 함께 한 축하파티가 벌어졌다. 축하주로 한 사람씩 건넨 소주를 10잔 이상 들이켠 그에게 동료들의 질투가 쏟아졌다.
“사실사모님이장학사님옷이나신발 엉망인 채로 출근시키시는 거 못 봤어요. 사모님이 워낙 잘 하시니까 장학사님도 잘 해주시는 거지….”
너털웃음을 짓던 이 장학사가 부하 직원이 건넨 술잔을 반만 들이켜고 슬쩍 내려놓는다.
“오늘 식구들이랑 돌아가신 어머니와 장인 어른 산소에 가기로 했어요. 좋은 일이 있었으니 감사 드리러 가야죠.”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