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세르 교수는 누구인가
△1930년 프랑스 아장 출생
△1952년 고등사범학교 입학
△1955년 철학교수 자격시험 합격
△1968년 라이프니츠의 철학 연구로
철학박사학위 취득
△1969년∼현재 프랑스 소르본느대 교수
(과학사)
△1984년∼현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1990년∼현재 프랑스 학술원 회원
△주요논저:‘헤르메스’(1∼5권),‘이탈’ ‘오감’‘양성동체’‘과학사의기본요소 들’, ‘자연적 계약’, ‘천사들의 전설’ 등 다수
▽김성도〓선생님께서는 최근 간행된 책‘인간의새로운모험(Hominescence)’ 등을 통해 생명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최근의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데, 문명사적 관점에서 그 의미를 짚어 주시지요.
▽미셸 세르〓에너지와 정보의 교환 없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나 유기체는 없습니다. 세포들의 화학반응부터 거대한 은하계까지 끊임없이 에너지와 정보를 교환합니다. 인류가 개발한 디지털 기술은 문자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명보다도 더 큰 문명사적 격변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커뮤니케이션의 확대로 경제는 전지구적인 것이 됐고 과학은 컴퓨터의 영향 아래 그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습니다.
▽김〓선생님께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사람들의 공간 의식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셨는데요.
▽세르〓우리는 ‘집중화’가 지배하는 공간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도시는 가정과 직장을 집결시키고, 기업은 생산과 소비 수단을 결합합니다. 또 은행 도서관 박물관은 재화 책 예술 작품을 한 곳에 모아놓습니다. 한 권의 책은 수 만 개의 단어들을 정열해 놓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집중화’라고 부를 수가 있지요. 그런데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현재의 집중화를 한 물 간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무엇보다 신속한 전달 기능을 갖췄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더 이상 ‘집중화’에 의존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은행에 가지 않더라도 금융거래를 할 수 있고 도서관에 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게 되었지요.
▽김〓선생님께서는 미테랑 대통령 때 추진되어 최근 완공된 프랑스 대도서관의 건립을 비판하셨는데, 이것 역시 이런 변화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세르〓저는 파리의 세느 강변에서 대도서관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씁쓸할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모든 종류의 정보를 담고 있는 컴퓨터 망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엄청난 돈을 들여서 그렇게 책들을 쌓아놓아 어쩌자는 겁니까? 이제 집중화는 분배에 자리를 내줍니다. 노트북 컴퓨터나 이동 전화를 통해 재화나 사람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진 순간부터, 틀에 얽매인 집중화의 필요가 경감됐습니다. 당신은 내가 어디에서 당신에게 전화를 거는지 알지 못한 채 나에게 답변을 하고, 나는 그 답변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모른 채 당신 얘기를 경청합니다. 우리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코드에서 코드로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김〓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이 구현하는 가상 공간은 현실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어서 그로 인한 부작용도 심각합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필요할까요?
▽세르〓우리는 더 이상 한계가 분명하게 그어진 경계도, 잘 구획 정리된 거리도 없는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누가 법의 주체와 그 법을 적용할 대상층을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인터넷은 현재로서는 법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장소입니다. 현재의 법은 가상 인터넷에 다가설 수 없거니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모든 자유를 말살할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계약, 새로운 법이 인터넷으로부터 나타나겠지만, 기존의 법이 새로운 매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법 자체가 새 매체로부터 만들어질 겁니다.
▽김〓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간의 기억능력 상실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기억능력은 인류역사에서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도록 한 중요한 인지기능인데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세르〓우리 조상들은 수 천 편의 시를 암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런 기억 능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상실했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은 과거의 기억 능력을 새로운 매체 속으로 서서히 옮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두뇌에서 진행되고 주관적이었던 인간의 기억은 묘비, 파피루스 두루마리, 종이를 통해 객체화됐습니다. 수 백만 편의 시를 암송해야 하는 부담으로부터 인지적 기능이 해방됐고, 그 대신 학자들은 자연 현상의 관찰에 몰두한 결과 실험 과학을 탄생시켰습니다. 이제 디지털 기술로 인해 더욱 기억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저는 낙관적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은 기억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만큼 과학 발전을 이룩할 가능성을 높이게 된 것이지요.
▽김〓새로운 테크놀로지에서는 일인칭의 사유보다는 복수 인칭의 사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신 적이 있는데, 복수 인칭의 사유란 어떤 의미입니까?
▽세르〓우리는 개인적 주관적 기억을 상실한 대신 집단적 객체적 기억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가 개인적 주관적이었다고 믿었던 인지 능력도 집단화하고 객체화합니다. 과거에 주관적이라고 믿고 있던 인지 능력은 나(1인칭), 너(2인칭), 컴퓨터(3인칭)로 이루어진 놀이 속에서 탈중심화됩니다. 철학은 우리의 언어가 최소한 세 가지의 주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 왔습니다. 도대체 누가 다른 사람과 컴퓨터의 도움 없이 세계를 사유할 수 있겠습니까?
▽김〓그렇게 인간의 사고방식이 변한다면 미래의 교육에서 새로운 정보 테크놀로지가 가지는 효과와 영향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세르〓교육은 정보 매체와 언제나 동시에 변화해 왔습니다. 오늘날 건물, 도서관, 실험실 등을 갖춘 대학교 캠퍼스를 마련하는 데 드는 투자비용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해서 이뤄지는 동일한 교육의 분배에 드는 비용에 비해서 무려 수 백 배가 더 듭니다. 이 같은 저렴한 비용 때문에 지식에 아직도 접근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과 단체에게 소중한 기회를 줄 겁니다.
▽김〓선생님은 수 년 전부터 지식의 민주적 분배를 강조해 왔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의 개발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르〓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빈곤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욕망이 아닌, 그들의 바람에 따라서 지식의 무상 지원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저에게 돈이나 빵을 준다면 저는 그 돈과 빵을 가지게 되지만 당신은 더 이상 그것을 갖지 못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제로 섬 게임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저에게 수학의 정리나 시를 가르쳐준다면, 저는 그 가르침을 받고 당신도 그것을 여전히 간직합니다. 어떤 교환도 생산해 낼 수 없는 무한한 팽창과 번성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즉 모든 사람이 승리하는 놀이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저는 지난 10년 전부터 원격 사이버 교육을 확산시켜 모든 사람들, 특히 제3세계와 제4세계의 사람들에게 제공하려 했습니다. 이 방법은 세계를 더 평등하게 만들 겁니다.
<정리〓김형찬기자>khc@donga.com
◆ 대담=김성도 고려대교수
△1963년 서울 출생
△1986년 고려대 불문과 졸업
△1991년 프랑스 파리대 언어학 박사(언어사상사 및 기호학)
△1995년∼현재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
△2001년8월∼현재 영국 옥스퍼드대 언어학연구소 및 미술사학과 초청 방문교수
△주요 논저:‘소쉬르 사상의 연속성에 관하여’(박사학위논문),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 ‘구조에서 감성으로’, ‘발화작용의 패러다임’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