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 그들이나, 뜻있는 날엔 뜻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추석이나 설날이나, 명절음식을 장만하는 우리나라 주부들은 즐겁다기 보다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듯한 비장한 각오로 음식만들기에 돌입한다. 식구들은 잘 먹지도 않는 차례음식을 몇가지씩 만들어야 하고, 손님접대용 음식은 따로 또 만드느라 동동 거린다.
몇년전 Thanksgiving Day 무렵에 아리조나주 피닉스의 미국인 집에 며칠 묵은 적이 있다.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는 두 부부가 음식장만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부부가 함께 하는 즐거운 요리만들기▼
안주인은 고급 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는데, Thanksgiving Day 일주일쯤 전부터 직장에서 돌아오면 남편과 한가지씩 요리를 만들어 냉장고에 쟁여놓는 것이었다. 지금같으면 무슨 요리들을 그렇게 일찍부터 미리 만들어 보관해두는지, 그래도 맛이 변하지 않는지 물어봤을텐데, 그땐 그걸 못했다. 하긴 나이들면서 예전에 그랬던, 혹은 그러지 못했던 일들을 후회하는게 어디 하나둘이랴.
Thanksgiving Day 아침, 바베큐틀에 칠면조를 굽는 것은 남편 몫이었다. 그는 오전내내 바베큐틀 옆에 서서 칠면조 밑으로 흐르는 맛있는 국물을 칠면조에 다시 바르며 윤기나게 고기를 구웠다.
손님들이 방문한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다. 그들은 점심인지 저녁인지를 즐겁게 먹고는 친한 친구부부 한쌍만 남기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일찌감치 돌아갔다. 그러니까 안주인이 밤늦게까지 손님대접하느라 고생스럽지 않아 좋았다. 설거지는 남편과 남편의 친구가 맡아서 했다.
▼부시 대통령은 무엇을 먹을까▼
뉴욕타임스가 최근 부시 대통령 부부의 Thanksgiving Day Dinner를 소개했다. 로라 여사는 50년대 텍사스식 칠면조요리, 콘브레드 드레싱, 메쉬드 스위트 포테이토, 푸른콩, 그리고 호두가 들어간 단호박파이를 먹을 것이라고 했다.
(부시 대통령도 지금 인기가 있으니까 그가 뭐해서 먹나 궁금한거지, 인기 폭락일 때라면 이런 기사가 나와도 안읽일 터이다. 김대중 대통령 부부가 명절 때 무얼 어떻게 만들어 드시는지 궁금하신 분, 한번 손들어 보실래요?)
슬프게도 나는 요리를 못해 이런 걸 못해먹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번 시도해봄직 할 것같아 로라 여사의 조리법을 중계한다. 칠면조를 구하기 어려우면 닭고기로 해봐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다.
◆ 메이플 버터로 윤기를 낸 로스트 터키
(요리시간 2시간반∼3시간, 14∼16인분)
14∼16파운드짜리 칠면조 한 마리, 레몬 반개, 사과 1개(4등분해서), 양파 1개(반으로 잘라서), 셀러리 서너줄기(반으로 잘라서), 소금, 버터 ¼파운드, 메이플시럽 반컵.
①오븐 온도를 325도로 맞춰놓는다.
②칠면조 속에 레몬, 사과, 양파, 셀러리를 채워넣고 묶은 다음 소금간을 한다.
③팬에 메이플시럽을 넣고 버터를 녹인 뒤 칠면조에 붓는다. 오븐에 넣고 1파운드 당 10∼12분 굽는다. 20분마다 메이플 버터를 골고루 발라준다.
④온도계로 넓적다리를 찔러보아 175∼180도면 된다. 고기를 자르기 전에 오븐에 20분 더 놓아둔다.
◆ 콘브레드 드레싱
(요리시간 1시간 15분, 12∼14인분)
△콘브레드=기름 반컵, 옥수수가루 2컵, 밀가루 2컵, 베이킹 파우더 2큰술, 설탕 4작은술, 거품낸 계란 2개, 우유 2컵, 소금.
△드레싱=다진 양파 3컵, 다진 셀러리 3컵, 소금 안들어간 버터 ½파운드(16작은술), 올리브오일 1큰술, 다진 세이지(sage) ½컵, 칠면조 국물 3컵, 소금, 후추.
①오븐 온도를 450도로 맞춰놓은 뒤 베이킹 팬에 기름을 넣고 오븐안에 뜨거워질 때까지 둔다.
②옥수수가루, 밀가루, 베이킹 파우더, 설탕, 소금, 거품낸 계란과 우유, 뜨거워진 기름을 그릇에 넣고 세게 저어 섞은 다음 20∼25분간 황금색이 될 때까지 구워 콘브레드를 만든다.
③드레싱을 만들기 위해 오븐 온도를 350도로 낮춘다. 양파와 셀러리를 12작은술의 버터와 올리브 오일에 넣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익힌다.
④잘게 부순 콘브레드에 세이지, 소금과 후추, ③의 양파와 셀러리를 넣고 9인치×12인치 그릇에 담는다.
⑤남은 4작은술의 버터를 녹여 그릇에 담은 콘브레드 위에 뿌리고, 칠면조 국물도 숫갈로 골고루 뿌려준다.
⑥호일을 씌워 20분 굽고, 호일을 벗긴뒤 10분 더 갈색이 될 때까지 굽는다.
◆ 스위트 포테이토 퓨레
(요리시간 45분, 12∼14인분)
중간크기 고구마 8∼10개, 소금 안들어간 녹인 버터 ½컵, 크림 ¼컵, 거품낸 계란 2개, 시나몬 ½티스푼, 바닐라 1티스푼, 호두 다진 것 ¾컵, 소금.
①오븐 온도를 350도로 맞춰놓는다.
②고구마를 삶아 으깬 다음 버터, 크림, 계란, 바닐라, 호두 반컵과 소금 약간을 넣어 섞는다.
③찜그릇에 넣어 윗부분을 호두로 장식한뒤 30분 굽는다.
<김순덕 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