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을 말한다]연출가 이윤택의 '강부자의 오구'

  • 입력 2001년 11월 22일 18시 21분


1989년 ‘오구’는 이틀만에 쓰여졌다. 밥 먹지 않고 잠 자지 않고 그냥 신들린 듯 ‘공병우 타자기’를 두들기다 보니 밤이 내리고 새벽이 왔다. 나는 온몸에 툭툭 불거지는 두드러기의 가려움증을 참다 못해 팬티까지 홀랑 벗어 던지고 글을 써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제목을 ‘잘 가세요’라고 붙였다. 작품 말미에 관객들을 향해 부르는 대중가요의 노래 가사를 따서 붙인 것이다.

1989년 초연 연출을 맡은 채윤일 선생이 아무래도 제목이 너무 가볍지 않느냐고 해서 ‘오구’라고고치고 ‘죽음의 형식’이란 부제까지 그럴듯 하게 달아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오구’ 출발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채 선생은 연습이 한창이던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8초연 당시 서울연극제에서는 별 신통한 반응이 없었다.

그 이듬해 채 선생은 작가인 내게 연출을 맡겼다. 그래서 90년 6월 ‘연희단 거리패’의 ‘오구’가 첫선을 보였는데, 이게 화제가 됐다. 공연 도중 원로 연극인 어르신들이 퇴장하는 사퇴가 일어났고, 평론가 이상일 선생의 혹평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화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가족단위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는 사실이다. 이후 ‘오구’는 11년째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강부자 선생이 97년 노모 역할을 맡으면서부터 실버 세대 관객까지 객석을 메우는 정동극장의 고정 레파토리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오구’를 마땅찮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고, 경박한 대중극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난 ‘오구’를 가장 한국적인 서민극 혹은 대중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중과 같이 호흡하는 연극이 가장 오래남는 고전이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오구’는 내년 3월 강 선생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다.

(희곡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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