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주도한 화덕현씨는 일약 유명 시민운동가가 됐다. 언론사에는 제2의 화덕현을 자임하며 보도요청서를 보내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러나 문단은 예상외로 침묵을 지켰다.
급기야 소설가 박완서씨가 문학단체의 침묵을 향해 죽비를 내리쳤다. 평소 수줍음 많던 그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내가 이문열씨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이 모욕 당하는데 어떤 발언도 없이 넘기는 것은 문학 하는 사람들의 도리가 아니다.”
발언의 파장은 적지 않았다. 박씨는 문단 정치에 거리를 둔 청렴함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소장 문학평론가인 한기씨는 심층적인 차원에서 영향을 분석한다. 한씨는 계간 ‘문예중앙’ 겨울호에 실린 ‘문학을 위한 모독’에서 이번 사태는 비단 이씨만의 상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처를 입은 것은 문(文) 자체”라면서 활자문화의 몰락을 우려했다.
모든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이씨의 심정은 어떨가.
“(책 장례식으로)마음이 심란했는데 처음보다는 나아졌다. 터질 것 다 터졌고. 당할 것 다 당했다. 맞은 놈이 다리 뻗고 자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는 “요새 오랜만에 창작열을 느낀다”면서 신작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내 문학이 과연 쓰레기통에 쳐박혀야 할 것인지 독자에게 작품으로 재평가받고 싶다”는 설명. 이씨는 2∼3년간 작품 쓰기에만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구상한 장편 ‘호모 에세쿤스(처형자)’를 내년 봄쯤 탈고할 예정이다.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사람의 아들’ 속편격인 야심작이다. 대하소설 ‘변경’의 후속으로 80년대를 정리하는 작품을 위한 취재도 계속하고 있다.
내년 1월경에는 산문집도 출간한다.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를 정리하면서 젊은 세대와 진지한 대화를 모색할 요량이다. 독일의 애국철학자 피히테의 ‘독일 청년에게 고함’을 염두에 둔 듯하다.
‘책 장례’를 통한 시선끌기와 이씨의 창작 의욕 중 어느 것이 독자들의 평가를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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