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최장수 이장 익산시 전성희 옹▼
전북 익산시 황등면 보삼리 3구와 6구 이장 전성희(全聖熙·82) 옹은 59년째 이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1943년 계미(癸未)년에 이장이 돼 내년이면 이장 생활로만 육십갑자를 완성한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그는 전국 최고령, 최장수 이장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주민들은 긴 세월 궂은 일을 맡아온 그를 기려 송덕비를 세웠다.
그가 일제 말기 처음 이장을 맡은 것은 “아버지가 사법서사이니 네가 이장 한번 해보거라”는 주민들의 권유 때문. 그는 네살 때 주사를 잘못 맞아 다리가 불편했는데 이장이 된 후 다리의 불편함이 ‘자란 곳에서 멀리 떠나지 말고 고향을 지키라’는 하늘의 뜻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장 생활 태반을 수당이나 봉급 없이 무보수로 일했다. 공출을 하라는 일본인들의 닦달을 받으면서도 주민의 인심을 잃지 않았다. 곡식을 숨겼다가 일본 경찰에 끌려간 주민들이 있으면 면서기를 하고 있던 외사촌과 함께 풀어내기도 했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은 70년 마을회관인 ‘삼육회관’을 세운 것. 당시 그는 면 토지대장을 다 뒤져 ‘주인 모르는 빈 땅’ 600평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등기소까지 찾아가 원주인의 아들을 알아낸 다음 “141평만 마을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당신이 가지라”고 졸라 허락을 받아냈다. 주민들은 그의 노력에 감동을 받아 취로사업에서 번 돈을 회관 건축비로 내놓았다.
주민들은 한때 면에서 그에게 다리가 불편하다며 민방위 대장과 겸해야 하는 이장직을 내놓으라고 권유하자 군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 주민들이 그를 위해 세운 송덕비는 그의 고향 황등에서 나는 돌인 ‘황등석’으로 만든 것이다. 이 돌은 청와대의 기둥을 세우는 데도 쓰인 것이다. 주민들은 그를 ‘보삼리의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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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양재2동장 김만수씨▼
서울 서초구 양재 2동장인 김만수(金萬守·60)씨는 99년 동장 발령 직후 “이제야 내 일을 찾았구나” 생각했다. 66년 9급 서기보로 시작한 그는 진급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면서 “혹시 나는 패배자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동장으로서 마지막 결실 같은 것을 맺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마라토너, 아마추어 사학도, 단소 연주자 등으로서 익힌 기량을 ‘동정(洞政)’에 써보기로 했다. 처음 시작한 것이 ‘양재천 마라톤 클럽’. “승부를 가르지 않는 정직한 운동이어서 동민 사이에 마라톤 인구를 넓히는 것만 해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같이 뛰던 주민 중에는 마라톤으로 우울증을 치료한 이도 생겼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주민 김정옥씨(49)는 올해 중앙하프마라톤에서 여성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우리 민속인 ‘해맞이’ ‘달맞이’를 양재 2동의 청계산에서 해보기로 했다. 지난해와 올해 1월1일과 정월 대보름에는 2000여명의 주민이 몰려와 새해와 대보름을 맞았다. 청계산 토성가든에서는 주민들에게 해장국을 재료값에 팔고 받은 돈을 불우이웃돕기에 내놓았다.
김 동장은 올 가을부터는 양재근린공원에 나가 쉬러 나온 회사원들 앞에서 ‘뜬금 없이’ 단소를 불다가 반응이 좋자 점심시간마다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중국음식점 ‘양재각’ 주인이 아코디언을 잘 켠다는 소문을 듣고, 빵가게 ‘빵이 숨쉬는 공간’ 주인이 색소폰을 잘 분다는 소문을 듣고 한사람 한사람씩 초빙하기 시작했다. 근린공원은 작은 명소가 됐다.
그는 대전 엑스포 조직위에서 일하다가 “법이나 제도보다는 이벤트가 갖는 무언의 계도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동장이 되자 ‘동화 같은 생각’들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가 천변에서 주민들과 마라톤을 하고 있을 때, 공원에서 주민들과 섞여 연주회를 보고 있을 때 그는 패자가 아니라 공직생활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