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인 키스 베이클즈가 지휘하는 말레이 필은 수업 배경이 다른 여러 연주자가 모여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현악기의 치밀한 앙상블을 위주로 철저하게 조련돼 있었다. 베를리오즈의 ‘해적’ 서곡에서는 80여명의 연주자가 무대를 메웠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절반 이하의 편성과 같이 정밀한 실내악적 현 음색이 표현돼 경이로웠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도 현의 음색이 최대한 강조되는 작품이어서, 이 악단이 자랑하고자 하는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수 있게 했다. 이에 비해 목관과 금관의 경우 흔들림 없는 기량이 인상적이었지만 현의 아늑한 포장 안에 숨어 무색무취하게 들렸다는 점은 불만으로 남았다.
말레이 필은 분명 2500여명의 한국 관객에게 이 동남아 국가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악단을 운영하고 있는 ‘페트로나스’라는 한 석유 기업이 혼자 이룩한 성과다. 국내 유수의 민간 교향악단들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때 ‘문화 지킴이’를 자임했던 국내 대기업들은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