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슨의 유족들은 임종 직후 성명에서 “부인 올리비아 해리슨과 아들 다니(24) 등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족들은 장례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존 레넌이 1980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팬의 총격으로 사망한 데 이어 해리슨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 비틀스 멤버는 폴 메카트니와 링고 스타만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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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은 1997년 후두암 치료를 받은 후 올해 초 뇌종양이 발병했으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투병 중에도 11월에 출반된 영국 뮤지션 줄스 홀랜드의 앨범 ‘스몰 월드, 빅 프렌즈’에 실린 신곡 ‘어 호스 투 워터(a horse to water)’를 작곡했다.
비틀스 멤버 중 레넌과 메카트니가 팀의 기둥이었다면 해리슨은 ‘조용한 비틀(quiet beatle)’로 불릴 정도로 내성적인 뮤지션이었다. 그룹 해체 후 그는 영국 밴드인 ‘배드 핑거’의 프로듀서 겸 작곡가로, 에릭 클랩턴과 함께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인정받았다. 뿐만 아니라 비틀스 해체 뒤 방글라데시 난민돕기 자선공연을 여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해리슨은 1995년 메카트니, 스타와 일시 재결합해 발표한 ‘비틀스 앤솔로지’ 시리즈에서 레넌의 생전 목소리에 연주를 결합해 ‘프리 애즈 어 버드(free as a bird)’, ‘리얼 러브(real love)’ 등을 선보였고 지난해 비틀스의 히트곡들을 재편곡한 ‘원(1)’으로 미국 빌보드차트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황태훈기자>beetlez@donga.com
▼英여왕-佛총리 조의 세계각지 추모 물결▼
29일 영국의 전설적인 팝그룹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는 충격 속에 추모열기에 휩싸였다.
해리슨의 고향인 리버풀에는 추모인파가 몰려들었고 비틀스의 멤버 존 레넌을 추모하기 위해 이름 붙여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스토로베리 필드’에도 이른 새벽부터 추모행렬이 줄을 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매우 슬프다”라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앙골라-아일랜드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더블린을 방문중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버티(버티 어헌 아일랜드 총리)와 나의 세대는 비틀스와 함께 성장했다”면서 애도를 표했다. 40대인 블레어 총리는 “그들의 음악과 비틀스라는 밴드의 성격은 우리 삶의 배경이었다”고 덧붙였다.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는 해리슨을 “위대한 팝 음악인 중의 한명”이라고 평가하면서 조의를 표했다. 해리슨와 함께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는 “해리슨의 사망 소식에 망연자실했다”면서 “그는 사랑스럽고 용감한 사람이었으며 훌륭한 유머 감각을 갖췄다”고 술회했다. 존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는 “그는 훌륭한 뮤지션이었다”며 “그의 음악과 위트는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존 레넌 박물관의 아쿠추 주니치 대변인은 “비틀스 활동을 하는 동안 존이나 폴의 그늘에 가려 있었지만 그의 솔로 활동은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으며 인도의 한 음악가는 “그가 동양과 서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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