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술 주假-빌릴 가 客-손 객 顚-엎어질 전倒-넘어질 도 靈-신령 영
며칠 전 象形(상형)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象形이 출현하고 한참 뒤에 나타난 또 다른 형태로 假借(가차)가 있다. 象形이 ‘그리기’라면 이 놈은 글자 그대로 ‘빌리기’다. 즉 기존의 문자를 빌려와서는 되갚지 않고 제 것인 양 사용한 경우다. 이것이 수 백 년 지속되다 보니 主客(주객)이 顚倒(전도)되어 제가 주인인 양 행세한다. 고약한 예라 하겠지만 한자에서 이런 예는 심심찮게 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 흔히 우리가 말하는 北은 애초 ‘방향’(북쪽)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글자였다. 外觀(외관)에서 보듯 본디 두 사람이 토라져 앉아 있는 모습의 指事文으로 ‘등지다’라는 뜻일 뿐이었다. 그것이 후에 ‘북쪽’으로 借用(차용)되더니만 주인노릇을 하고 말았다. 결국 ‘등지다’라는 뜻은 여기에 다시 月(肉)을 덧붙여 ‘背’(등질 배)자를 다시 만들어 내야 했다. 또 ‘新’은 본디 ‘장작’(또는 땔감)이었는데 후에 ‘새롭다’는 뜻으로 사용되자 장작을 뜻하는 ‘薪’(장작 신)자를 새로 만들게 되었다.
술을 뜻하는 ‘酒’ 역시 假借의 결과로 나온 글자다. 본디 술은 ‘酉’(유)라 했다. 그것은 술병에 술을 담은 뒤 행여 날아갈까 뚜껑을 꼭 막은 모습을 보고 만든 전형적인 상형문이다. 누가 봐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가. 그것이 후에 干支(간지)의 酉(닭 유)로 전용되자 새 글자를 만들어야 했는데 알다시피 술은 물과 흡사하기 때문에 물을 뜻하는 ‘물수’(水)를 덧붙여 지금의 ‘酒’자를 만든 것이다.
술이 출현했던 초기에는 각종 의식에 사용될 정도로 매우 신성시되었다. 그래서 ‘無酒不成禮’(무주불성례·술이 없으면 禮法이 성립되지 않음)라 하지 않았던가? 그 흔적은 지금까지도 남아 제사상에는 어김없이 술이 오른다.
하지만 잘 쓰면 靈藥(영약)이요, 못 쓰면 死藥(사약)인 것이 술이다. 여기서 잠시 전설 한 토막을 보자. 옛날 중국 禹(우)임금 때 儀狄(의적)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한 번은 물에 담근 쌀에서 이상한 향기를 느껴 그 물을 禹에게 바쳤다. 감미로운 향에 빠져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그만 황홀경에 빠져 잠이 들고 말았다. 후에 깨어난 禹가 말했다.
“너무 맛있구나. 후세에 술 때문에 망하는 자가 반드시 나오리라!” 하고는 마침내 儀狄을 멀리 했다고 한다. 과연 역사를 보면 술 때문에 亡國한 예가 없지 않다. 이제는 亡國이 아니라 亡身(망신)이다. 술자리가 잦은 때가 왔다. 절제를 하자.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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