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고나서]대견한 청소년 이야기 진한 감동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8시 29분


‘아버지는 광부였다. 어머니가 수면제를 먹었는데 구급차를 일찍 불러 살아 나셨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드셨다. 아버지가 없었으면 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형은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나보다 키가 작아 군대에도 안 간다. 하지만 나는 형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다.’

중학생들 글 모음집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보리)에 실린 ‘형’이라는 글입니다. 고등학생들의 글모음집 ‘날고 싶지만’(보리)에는 한 여고생의 이런 글도 있습니다.

‘새아버지가 왔다. 집에 불이 나 다리를 데어 엄청난 피가 흐르는데도 학교에 갔다. 나의 어린 시절은 파란만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행복하다. 헤어진 오빠들이 돌아와 이제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두가지를 느꼈습니다. 하나는 최근 경제난에 따른 가족해체로 이 땅의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삶의 무게로 고통받고 있다는 겁니다.

이 책의 10대들은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먹으며 그저 공부만 하면 되는 그런 아이들이 아닙니다. 안 계신 어머니를 대신해 살림하랴 공부하랴 바쁜 여학생, 어려운 가정형편에 도움이 될까 기꺼이 취업전선에 나선 남학생…. 그러나 그들은 제 몫의 삶을 온전히 살아 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맑고 씩씩했으며 착하게 정직했습니다. 참 대견했습니다. 아무리 뭐라해도 세상은 살 만 하구나 하는 감동이 일었습니다.

또 한가지 느낀 것은 ‘과연 감동을 주는 글이란 어떤 것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책을 그저 몇페이지 정도 읽다 접어 두려 했지만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속으로 울다가 웃다가 때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미사여구도 없고, 삶의 대단한 통찰도 없는 그들의 글은 담백함 그 자체였습니다. 조미료 안 넣은 음식처럼 말이지요. 감동을 주는 글이란 이처럼 솔직하고 진실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방학과 연말연시를 앞둔 요즘 출판가는 성수기답게 평소보다 많은 책들을 쏟아 냈습니다.

칼 세이건 책을 1면에 소개한 것은 세계적 천문학자 세이건의 5주기라는 시의성도 고려가 됐지만 그의 우주적 세계관을 읽다 보면 일상이 훨씬 가벼워 진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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