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음료를 드릴까요”라는 질문에 독일 남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맥주를 찾는다. 맥주를 즐기는 국민에 다양한 맥주가 있으니 그들에겐 각자 나름대로 즐기는 고유한 맥주가 있다. 그 맛은 각자의 기호에 맞는 독특한 맛과 성격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런 독일인들에게 미국의 맥주가 맛있을 리 없다.
미국엔 2억6000만명이 살고 있으나 주로 팔리는 맥주는 크게 몇 종류로 제한되어 있다. 이런 ‘메이저’ 맥주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브랜드로 우리 나라 젊은이들도 즐겨 찾는다. 인구 8000만명에 4000종이나 되는 독일 맥주, 그 3배가 넘는 인구가 찾는 제한된 몇 종의 맥주, 이처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맥주문화 속에서 우리는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대표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맥주는 맛(taste)이 없는것이아니라독특한 성격(cha-racter)이 없다. 200여 민족이 함께 모여 사는 나라에서, 세계인들의 모든 입에 두루 맞는 공통적인 맛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는 ‘보편적인 맛’을 찾을 수밖에 없고 가급적 독특한 성격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값싸고 어디서나 손쉽게, 그리고 거부감 없는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미국 맥주이자 글로벌리즘의 핵심이다. 햄버거가 그렇고 청바지가 그렇다.
3M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서비스산업, 즉 맥도널드, 미키 마우스, 마이크로 소프트가 글로벌리즘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것도 값싸고 손쉽고 거부감이 없다는 특징과 전세계 어디에 갖다 놓아도 무리 없이 통용되는 ‘보편성’이 공통점이다. 이 모두가 미국에서 유래하였기에 글로벌리즘은 곧 아메리카니즘이라고 몰아붙이는 이도 적지 않지만, 사실은 나에게 편하고 부담 없다는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이유에서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 것이 아니라도 글로벌화에 성공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탈리아가 원산인 피자가 햄버거를 누르고 패스트푸드의 선두주자가 된 것이라든지, 간편하게 포장해주는 중국 음식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문 닫는 식당이 늘어 비상이 걸렸다든지, 일본식 스시(壽司)가 이젠 웬만한 나라에선 확실한 뿌리를 내린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매운 음식을 포기하지 못하듯, 독일인들은 자신만의 맥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특화된 맛과 성격의 지역 맥주, 이것이 배제된 보편화된 맛의 맥주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마셔오던 그 맛을 즐기면서 그들은 맥주 마시는 기쁨을 계속 만끽할 것이다. 이것은 곧 로컬리즘의 기쁨이기도 하다.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은 그래서 상극(相剋)이 아니라 상생(相生)의 관계인 것이다.
이원복(덕성여대 디자인학부 교수·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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