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리 전망 2002/이언오 외 지음/387쪽 1만2000원 삼성경제연구소
국내외 정세와 경제질서의 불안정한 변동 속에 시작한 2002년. 예측은 항상 틀릴 가능성이 더 많음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불확실하게나마 누군가 조감도를 그려주기를 기대한다. 세계 정세와 경제 전망을 다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더 월드 인 2002(The World In 2002)’와 국내 경제 전망을 주로 다룬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세리 전망 2002’는 이런 사람들에게 적잖은 위안을 제공한다.
“2002년은 점진적인 회복의 한 해가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전장에 먼지가 피어오르고 세계가 불안에 떠는 가운데 미국은 승리를 거둘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반드시 더욱 극적인 방법으로 재차 공격해 올 것이다. 하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할 것이다….”
매년 초 90여 국에서 20개 언어로 동시에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의 이 새해 전망서는 첫장 첫줄부터 자신감에 차 있다. 예측의 말투에 주저함이 없다. 비록 나중에 이 예측이 틀렸다는 사실이 판명될지라도, 무릇 예측서란 기대하는 사람에게 분명한 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편집자들의 철학인 듯하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것은 분명 ‘예언’이 아닌 ‘예측’이다. 각 지역 및 부문에 대한 전망은 모두 ‘이코노미스트’의 담당자들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최신 자료와 안목을 가지고 제공하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2002년의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미국의 테러전쟁이다. 작년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대해 반성을 요구했던 9·11 테러 이후, 이에 대한 대처가 바로 새로운 질서를 짜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대체로 독자들에게 ‘희망’과 ‘긍정’을 안겨주고 싶어한다.
이들의 ‘전망’에 따르면 미국은 2002년 궁극적 승리를 거두는 동시에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세계 경제도 점차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과 유럽이 모두 후반기에 빠른 경기 회복을 보이고, 금리는 2002년 한 해 동안 오름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현대경제연구원의 한국 경제 전망도 ‘이코노미스트’의 논조를 이어 희망적이다. 2002년 국내 경제는 불황의 바닥으로부터 탈출해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은 고성장 시대로 회귀하지는 못할지라도 4%대의 GDP 증가율을 전망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와 현대경제연구원에 비하면 삼성경제연구소의 전망은 대단히 조심스럽다. 해외로부터는 테러 전쟁의 충격이 여전하고 국내에서는 부실기업 처리가 늦어져 사고 위험이 잠재한 데다가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등 2차례의 선거까지 있어 미래를 예측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테러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성급히 예측하지 않는다. 테러를 계기로 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모색이 계속되며,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에서 미국, 유럽, 아시아의 중국이 부상하는 3극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 전망한다.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3%선에 머물며 2년 연속의 저성장으로 장기침체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대경제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소가 공통적으로 염려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근간이 된 IT 산업의 회복이 세계적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2002년 선거로 인해 경제가 정치 논리에 휘둘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예측은 틀릴 수 있다. 그러나 필자들도 지적하듯이 틀리는 예측일지라도 예측치를 좌표로 갖고 있어야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자신의 위치도 판단할 수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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