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종정 추모사]큰가르침 세상구원하는 등불될것입니다

  • 입력 2002년 1월 4일 18시 12분


혜암 종정을 추모하며

혜암(慧菴) 종정 큰스님!

홀연히 열반에 드신 스님의 다비식을 준비하는 가야산은 지금, 무거운 침묵과 애도의 슬픔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육신에 집착말고 속지 말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이 못난 후학은 스님의 열반 소식에 자꾸만 추모의 정이 앞섭니다. 지금의 이 슬픔은 우리 종단의 최고 어른을 잃은 아쉬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해인 총림(叢林)을 지도했던 산중의 큰 어른을 보내는 비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후학들에게 고구정녕(苦口丁寧)한 가르침을 주던 스님의 목소리는 아직까지 가야산을 쩌렁쩌렁 울리는데 스님의 모습은 이제 어디로 가셨단 말입니까.

스님은,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체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당당하고 여유가 있어서 살아 있는 사람을 오히려 긴장하게 만드는 입적(入寂)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척량골(脊梁骨) 곧추 세우고 화두를 놓지 않으신 그 모습은 그 어떤 법문보다 진한 감동이 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스님은 그 누구보다 용맹정진을 좋아하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평소 스님이 젊은 수행자에게 내리는 법어는, ‘공부하다 죽어버려라’는 냉골 찬 음성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하루 한끼만 드시면서 장좌불와 수행을 하신 것은 저희 후학들에게는 모범과 귀감이 되었고, 2000만 불자들에게는 환한 등불과 밝은 지침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백련암 환적대 토굴에서 처음 뵈었을 때 스님은 정말 눈빛이 형형한 40대 후반의 훤칠한 수행자였습니다. 바람을 막아 줄 문짝 하나 없고 방을 데워줄 장작하나 없는 그 차디찬 토굴에서 고행정진 하던 스님의 모습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게 깨우침을 주는 어록의 한 구절처럼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때 이미 스님은, 출가인의 자세는 앉고 서는 그 자리가 용맹정진의 순간이어야 하고, 먹고 자는 그 자체가 가행정진의 시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없는 가르침으로 보여주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스님의 그러한 철저한 수행자 정신이 소신과 원칙 앞에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가야산의 대쪽’ 성품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혜암 종정 큰스님!

스님이 계시던 원당암의 미소굴(微笑屈) 앞뜰에는 날이 무디어지고 닳아진 오래된 호미 한 자루가 놓여 있습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百丈淸規)를 몸소 실천하셨던 스님의 유품이기도 합니다. 그 호미를 통해 공부를 지도할 때는 한없이 자상하였지만 당신의 수행에는 한치의 틈도 허용치 않았던 스님의 살림살이를 새삼 깨닫습니다. 육신의 소멸을 통해 적멸의 자유가 무엇인가를 분명 보여주고 가시기 때문에 지금의 이러한 애사(哀辭)는 어른을 잃은 한 어리석은 후학의 넋두리라 여기실 것으로 믿습니다. 부디 영원한 열반락(涅盤樂)을 얻으소서.

세민 스님(가야산 해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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